이강윤 칼럼니스트
오늘은 시를 통해 혼탁한 일상과 삶, 사회를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말과 글을 부림에 내로라 하는 시인들께 편지 한 장 내려니 주눅부터 듭니다. 시집이 아예 팔리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안팔리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시인이나 시민들에게나 안타까운 일임은 분명합니다. 시를 잊은 시대란 물 없이 사막을 건너는 일일테니까요. 시인들께서 좀 더 분면한 언어로 시민들의 애환과 열망, 분노를 같이 호흡한다면 시의 시대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습니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이후 2년 째 격변의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많은 변화들 속에서 희망의 싹을 보며 감격하기도 하고, 여전한 트집과 맹목, 딴지걸기를 보면서 분노와 절망을 느낍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 보다 만인의 한 걸음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절감하는 나날입니다.
저는 시인을 ‘잠수함의 카나리아’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등 우리 삶을 구성하는 환경의 변화를 누구보다 빨리 포착하고, 명징한 언어로 묘파해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삶의 의미와 지향할 바를 순정하게 전하는 것이 시인들의 주요 덕목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가 운동이자 혁명이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80년대 저 엄혹했던 겨울공화국 시절, 시는, 시인은, 치열한 불꽃이었습니다. 그 시와 시인들은 투쟁의 현장으로 사람들을 모이게 했고, 흔들리지 않게 어깨를 이어줬고, 등짝 시린 광장에서 화톳불이 돼줬습니다. 시인이 언제나 혁명가나 투사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니, 행여라도 오해는 말아주시지요.
1987년 7월 9일, 초여름 치고는 때 아니게 푸르스름한 안개가 자욱하던 그 새벽, 연세대 교정에 울려퍼진 문익환 시인의 이한열 군 추도사를 저는 잊지 못합니다. 민주화를 위해 산화해간 열사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호명하는 것만으로도 산천초목은 같이 울었고, 모골이 송연해지는 숙연함에 남녀노소는 그 날 그 여름, 하나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날 문 시인의 절절한 호명만큼 강렬한 시를 여지껏 본 적이 없습니다. 어떠한 형용이나 수식 없이 그저 사람들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도 완벽한 시가 된다는 것을 문익환 목사는 보여줬습니다. 당대의 모순과 불의를 외면하지 않는 시, 삶의 현장을 떠나지 않는 시, 고단하고 아픈 사람들의 곁을 ‘배회’하는 게 아니라 기꺼이 다가와 손 잡아주는 시의 위대함을 많은 사람들이 절감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때론 직설일수도, 때론 상처나 방황을 위무해주는 붕대일수도, 지친 가슴을 감싸주는 포대기일수도, 불면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머리를 편안히 받쳐주는 베개일수도 있겠지요. 꽃이 피는 지 낙엽이 지는 지도 느낄 겨를 없이 일상에 허덕대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화신(花信) 한 귀절, 목련 스러지는 봄날 어느 하루, 책갈피 속 꽃잎처럼 마음 한 켠 함초롬히 적셔주는 글귀 한 줄… 그 한줄기 눈물은 얼마나 찬연한 감동이던가요.
부끄러운 고백 하나 하지요. 제 독해력이나 시적 상상력이 부족한 소치겠으되, 여러 번 읽어도 도무지 알아듣기 힘든 난해시는 참 힘 팽기게 하더군요. 시인은 분명히 뭔가를 얘기하고 있는데, 이리 보아도 저리 읽어도 무슨 뜻인지 어림잡기 힘든 작품들을 가끔 보면서 무력감에 사로잡히는 것이 저만의 경험인지 궁금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독해력 수준으로 내려와달라는 부탁은 아닙니다만, 시도 결국 사람들 사이의 ‘소통’을 중히 여긴다면, 한 두 번 읽고 알아들을 수 있는 시가 더 소망스럽다는 바램을 말씀드립니다. “모든 사람이 알아듣는 시를 쓰란 말이냐? 어렵다고 투덜대지 말고 자기 수준에 맞는 것을 찾아 읽거라. 문화란, 문학이란 모두가 한 번에 알아들어야 하는 신문기사가 아니잖느냐”라고 치부할 일은 아닌 듯 해서 말이지요.
시인이란 존재는 특수한 능력의 별종 인간군이 아니라, 시장통이나 버스정류장에서 만나는, 나랑 똑같은 공동체 구성원이라는 인식이 시인과 독자 사이에 동시에 확산될 때, 우리는 길동무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민망함 무릅쓰고 몇 말씀 여쭸습니다. 나라가 제 자리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한 지금, 시가 시민들의 등대같은 역할을 할 때 우리 삶은 진실로 풍요로워지는 게 아닌가, 우리가 가고자 하는 사회는 종내에는 그런 게 아닐까…라는 행복한 상상으로 글을 맺습니다. 건안 건필 기원합니다. 이 봄, 부디 새 봄이소서.
이강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