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의 저자 허혁씨는 '과로사회'의 최전방에 서있는 버스기사다. 전북 전주에서 격일로 하루 18시간씩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그는 자신의 삶을 책속에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버스기사는 더치페이의 달인이라고 한다. 빠듯한 수입이라 오직 자신이 쓰지 않음으로써만 가정을 건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버스기사에게는 공짜 회식도 없다. 1만원 한도 내에서 무조건 N분의 1이다. 애경사도 삼만원 이만원 일만원, 상중하로 봉투 액수를 정한다. 삼만원은 아주 각별한 사이로 개인 봉투를 하지만 이만원, 일만원은 여럿이 봉투를 만든다.
허혁씨의 식구들은 그날 벌어 그날 먹고사는 '최저임금 가족'이다. 아빠는 이것저것 수당은 있지만 결국 기본급에 따른 시급은 칠천원대 초반이고, 아내는 하루 일곱 시간에 오만원을 받는데 점심 값을 받지 못한다. 딸은 유명 커피점에서 일하며 시급은 육천원대 중후반, 아들은 고깃집 알바를 나간다. 가족 모두 최저임금 수준에서 일하지만 모두가 일하니까 '그러저럭' 살아진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아들이 조만간 음악을 하러 떠난다고 하자 아빠는 도대체 알바를 몇시간 해야 방세 내고, 밥 사먹고, 음악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다.
그런데 허혁씨가 올해인 2018년, 현 정부 들어 가족의 삶의 질이 놀랍게 좋아졌다고 말한다. 이 글을 작년에 썼는데 올 들어 최저임금이 전년대비 16.4% 올라 딸아이 월수입이 이십만원 가량 늘었다고 한다. 게다가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비정상적인 격일제 운행을 가능케 했던 근로기준법 59조 독소조항이 폐기돼 4월 현재 아빠는 그토록 고대하던 1일 2교대를 시범운행 중이다. 허혁씨 아들의 희망이 기본소득 월 300만원인데, 최저임금 상승이 높아질수록 희망의 끈을 계속 붙잡을 수 있다는 기대도 커진 것이다.
내년 최저임금이 최종 확정됐다. 논란 끝에 올해보다 10.9% 오른 시급 8350원으로 결정됐다. 두해 연속 두 자릿수 인상됐지만 노동계는 노동계대로 소상공인 등 사용자는 사용자대로 반발이 크다. 오히려 작년에 16.4%로 크게 올랐던 때보다 갈등이 더 깊어진 양상이다.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기대했던 노동자들은 실망이 컸고, 소상공인들은 2년 연속 두자릿수 인상의 충격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모두가 '불만'인 결정인것 같지만 알고보면 허혁씨의 가족처럼 최저임금 인상폭이 크면 클 수록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는 노동자들도 많다. '소득'이 실질적으로 늘어나, 노동자의 주머니가 조금은 무거워져 '숨통'이 트이는 놀라운 경험을 말이다. 다만 소상공인들의 무거워진 짐은 나눠질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 노동자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한다면 소상공인들에게도 큰 폭의 인상을 감당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줘야 한다. 최저임금이 오르더라도 부담을 덜 느낄수 있도록,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대책이 미미하기에 반발이 컸던 이유도 있다.
조만간 정부는 소상공인 등 최저임금 인상의 타격을 받는 업종에 대한 지원대책을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속도조절이건 아니건 최저임금 1만원시대를 가기위한 길을 밟고 있다면 해마다 갈등의 폭이 커지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주길 바란다. 최저임금 인상이 누구에게나 조금이라도 '삶의 질'을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말이다.
김하늬 경제부 기자(hani487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