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명연 기자] #
현대로템(064350)은 방사청으로부터 수주한 계약으로 12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과정에서 항공기 시뮬레이터와 관련 부품 등을 제조하는 썬에어로시스와 하도급계약을 체결한 뒤 소스코드(소프트웨어 개발에 들어가는 모든 동작 코드 총칭) 제출을 요구해 이를 현대로템 명의로 활용했다. 전체 도면의 30%가 썬에어로시스 기술이었지만 썬에어로시스가 받음 금액은 전체 계약금액의 5%에 불과한 5억원대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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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009540)은 힘센엔진 프로젝트를 통해 엔진 국산화를 성공하는 과정에서 중속 디젤엔진 부품 생산업체인 삼영기계 기술을 활용했다. 삼영기계의 기술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됐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았지만 현대중공업이 해당 제조공정과 QC공정, 작업계획서, 2차 공급자 현황 등 제조공정에 필요한 모든 자료를 요구했다. 이후 해당 자료를 타사로 넘겨 양산했고 현재 검찰에서 수사하고 있다.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중소기업으로부터 기술을 탈취하는 행위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가운데 근절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토론회가 23일 국회에서 열렸다. 정부가 혁신성장을 기치로 내걸고 있지만 정작 혁신의 주체가 될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기술 탈취로 인해 혁신 의지가 꺾이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제도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토론회를 주최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김남근 부회장은 "4년째 관련 토론회를 열고 있는데, 대기업 중심에서 중소기업 중심으로 경제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과정에서 이 문제가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문제의식 때문"이라며 "과거에는 대기업이 중소기업 기술을 습득해 빠르게 확산하는 것이 국가경제 전체를 위한 측면이 있었겠지만 이러한 관행이 고착화된 결과 기술탈취가 당연시돼왔다. 기업들은 기술개발해도 빼앗긴다는 인식으로 가격 경쟁에만 매달리게 됐고, 수직계열화로 이어져 망하면 다 같이 죽는 공생관계가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 역시 "혁신성장을 외치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기술 유출돼서 망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라며 "소득주도성장도 성과가 나려면 고용의 상당부분을 감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기술개발이 성공해 월급을 올려주면 해결될 일"이라고 말했다.
해결책으로는 ▲원 사업자에게 기술탈취 정당성의 입증책임 부과 ▲하도급 계약 해지 또는 종료시 기술자료 반환·폐기 의무 명시 ▲기술자료 정당거래를 위한 표준계약서 도입 ▲공정거래위원회·중소벤처기업부·검찰 등 협력을 통한 행정력 강화 등이 거론됐다.
토론회를 공동주최한 더불어민주당 송갑석 의원은 "대기업 등 일부는 불편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공정경제 실현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며 "기술개발 동기를 떨어뜨려 혁신을 저해하는 동시에 동반성장 생태계를 고사하는 위법행위를 제제하기 위해 해당업체에 손해배상액을 10배까지 높이는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기업의 기술탈취 근절대책 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송갑석 의원(가운데)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강명연 기자
강명연 기자 unsai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