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선릉역 1번 출구 인근 한 건물 앞은 국민이 보낸 꽃바구니·화분·직접 쓴 감사 메시지로 가득했다. 국정농단 사태를 파헤치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을 향한 응원 물결은 수사 종료를 앞둔 그해 2월까지 계속됐다. 시작 전 치우침·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한 특검팀이 약속을 지키고 진정한 노력을 보여줬다는 인정의 박수이자 격려였다.
1년 5개월여가 흐른 27일 강남역 9번 출구 근처 한 건물 앞에는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경찰들만 보일 뿐 국민의 메시지는 없었다. 변죽만 올렸을 뿐 성과 없이 사상 최초로 수사 기간 연장을 하지 않은 특검이라는 허무한 성적표만 받아든 허익범 특별검사팀, '드루킹 특검'의 초라한 현실만 드러냈다.
야당 원내대표가 밥을 굶고 일반인에게 폭행까지 당해가며 관철한 이번 특검은 이전 검·경찰의 부실 수사 논란 속에 여당 유력 정치인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수사 독립성이 핵심이었다. 특검은 누구보다 정치라는 테두리에서 멀리 떨어져 소신 있게 수사해야 했다.
모두의 기대는 공염불에 그쳤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단지 구속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고 노회찬 의원 관련 표적 수사 논란과 강제수사 이전 김 지사에 대한 신병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여당은 "특검이 수사보다 언론플레이에 매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후 송인배 청와대 정무비서관의 별건수사 논란까지 낳자 국민은 "특검을 특검하라"고 청와대 청원하며 특검에 등을 돌렸다.
정식 수사 개시 첫날 "증거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수사하겠다"고 강조한 허 특검의 출사표와 달리 특검은 가장 중요했던 독립성을 놓쳤고 '정치 특검'이라는 오명의 꼬리표를 마지막 순간까지 떼지 못했다. 한 변호사는 "수사 초기 특검이 드루킹의 입만 너무 믿고 수사하다 보니 동력 자체가 흔들렸다"고 진단했다.
이번 특검 실패는 국정농단 특검이 올려놓은 특검 위상 자체를 깎는 결과를 낳았다. 앞으로 또 거물급 인사 수사 시 특검을 또 도입할 수 있겠느냐는 비관론이 나오는 가운데 국회 계류 중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가 다시 고개를 든다. 특검이든 공수처든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검·경찰 수사면 충분한 사안을 가지고 이번처럼 하나 마나 한 '빈손 특검'이 더는 나와서는 안 된다. 국민 혈세 30억원은 그리 가벼운 돈이 아니다.
김광연 사회부 기자 fun35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