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현준 기자] 영상의 시대다. 텍스트, 이미지보다 살아 움직이는 영상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스마트폰을 접한 어린이들은 알고 싶은 정보가 있다면 유튜브같은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을 먼저 찾는다. 네이버와 구글같은 검색 포털이 아니다. 영상 제작자간의 경쟁도 심해졌다. 보다 재미있고 유용한 영상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플랫폼에 노출시켜야 한다. 권기호(36) 더베레스트 대표는 360도 VR(가상현실) 영상이 생소하던 시절부터 사방을 볼 수 있는 영상을 선보였다. 그는 플랫폼이 아무리 거대해도 콘텐츠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란 판단아래 360도 영상에만 집중했다. 꾸준히 콘텐츠를 선보인 결과 중국판 넷플릭스라고 불리는 중국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아이치이'에 콘텐츠를 공급하기에 이르렀다. 8월의 마지막 날 서울 상암동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영상 콘텐츠에 목말라 있었다.
최은용 더베레스트 이사(왼쪽)와 권기호 더베레스트 대표가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더베레스트
사비 털어 영상 찍어…"영상 콘텐츠에 대한 확신"
권 대표는 클래식 작곡을 전공했다. 졸업 이후 공연 업계에서 음악 관련 일을 했다. 하지만 늘 새로운 정보통신기술(ICT)에 관심이 많아 새로운 기기를 찾아 경험했다. 그러던 중 VR 기기 전문 기업 오큘러스의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를 만났다. 현실과 다른 또 하나의 세계가 펼쳐졌다. 2D 화면과 달리 고개를 사방으로 돌려도 배경이나 사물을 볼 수 있었다. 그는 360도 VR 영상 콘텐츠가 미래에 각광을 받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그때부터 영상에 관심이 많던 주위의 사람들과 360도 영상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유튜브에 더베레스트의 페이지를 만들고 부지런히 영상을 찍어 올렸다.
더베레스트가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2015년 한 영상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신인 걸그룹 밤비노의 신곡 댄스 연습 장면 영상이었다. 영상을 돌려가며 360도 화면을 모두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기존의 댄스 영상과 달랐다. 2D 평면 화면으로만 가수들의 공연 영상을 보던 네티즌들은 즉각 반응했다. 특히 해외에서 더 관심을 보였다. 조회수는 반나절만에 100만을 넘어섰다. 해외 네티즌들은 '영상을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볼 수 있는 것이 새롭다', '신인 가수와 노래를 홍보할 때 효과적인 아이디어'라는 의견을 냈다.
당시에도 360도 영상은 있었지만 더베레스트는 깔끔하게 이어지는 360도 영상을 선보여 차별화했다. 인물을 중심에 놓고 6대의 카메라로 각 방향에서 촬영했다. 각 카메라에 담긴 영상을 깨끗하게 이어붙여 360도 영상을 완성했다. 권 대표는 댄스 영상뿐만 아니라 요가와 필라테스 등 영상을 만들었다. 네티즌들이 각 방향에서 보며 따라할 수 있었다. 360도 영상의 장점을 극대화한 셈이다. 해외 커뮤니티에서 주목받으며 더베레스트의 유튜브로도 네티즌들이 많이 유입됐지만 수익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권 대표는 사비를 털어가며 영상 제작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중 기업들이 360도 VR 영상에 관심을 보이며 더베레스트에게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KT의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전시 현장을 360도 영상으로 제작했다. 현대자동차의 부산 국제 모터쇼 전시 현장과 CJ오쇼핑의 워터파크 광고 영상도 360도 영상으로 만들었다. LG전자의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스마트월드 애플리케이션의 360도 배경화면 영상도 제작했다. 방송사와도 손잡았다. JTBC와 함께 2016년 말에 일어난 촛불집회 현장을 360도 영상으로 제작해 선보이기도 했다. 권 대표는 기업들과 작업하며 번 돈을 다시 콘텐츠 제작에 투자했다. 하지만 아직 360도 영상 시장이 크지 않아 매출은 일정하지 않았다. 그의 고민이 깊어가던 올해 2월, 중국에서 제안이 왔다. 중국의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아이치이'에서 360도 영상을 공급해달라고 주문했다.
더베레스트의 유튜브 페이지의 동영상 목록. 사진/유튜브 캡처
더베레스트가 선보인 2018 VRAR 엑스포의 360도 영상화면. 사진/유튜브 캡처
"중국 플랫폼 독점 공급 전략, 차별화 포인트 될 수 있어"
아이치이와 계약을 맺은 더베레스트는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 공략에 본격 나설 계획이다. 아이치이는 중국 공략에 있어 더할 나위 없는 기회를 제공할 플랫폼이다. 아이치이는 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인 바이두가 만든 회사다. 월 순사용자(MAU)만 5억명이다. 매출은 넷플릭스에 뒤지지만 MAU는 넷플릭스(1억1800)를 앞선다. 세계 최대 내수 시장을 갖췄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지시로 중국 내에서 유튜브의 접속이 차단된 점도 한몫했다. 더베레스트는 중국인들이 좋아할만한 영상 제작에 집중하고 있다. 영상의 길이는 기존의 2~3분 분량이다. 총 10분의 영상이라도 짧게 나눠 올린다. 긴 영상을 끝까지 보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중국 플랫폼의 독점 공급 전략도 더베레스트에게 매력적이다. 권 대표는 "중국의 플랫폼들은 특정 제작사의 영상을 자신들에게만 공급해달라고 요구한다"며 "플랫폼 기업들이 더 비싸게 콘텐츠를 사더라도 그것이 다른 플랫폼의 차별화 전략"이라고 말했다.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넷플릭스도 이러한 전략을 구사한다.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만들거나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 MC 유재석이 출연한 '범인은바로너' 등의 콘텐츠를 독점 공급한다. 이는 국내 동영상 플랫폼들과는 다른 전략이다. 국내에도 CJ의 티빙, SK브로드밴드의 옥수수, KT 올레tv모바일, LG유플러스 비디오포털 등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유사한 영화나 예능, 드라마 등의 콘텐츠를 선보여 소비자 입장에서 크게 다른 점을 느끼지 못한다. 권 대표는 "양질의 독점 콘텐츠를 많이 보유할수록 그 콘텐츠를 보기 위해 사용자들이 해당 플랫폼으로 모일 수밖에 없다"며 "독점 공급 전략은 국내 플랫폼들도 참고할만한 점"이라고 말했다.
권 대표는 5세대(5G) 이동통신 시대에 대한 기대감도 숨기지 않았다. 5G는 기존 롱텀에볼루션(LTE)보다 데이터가 오고 가는 길이 넓어진다. 더 많은 데이터를 더 빠르게 주고 받을 수 있다. 그는 "360도 VR 영상은 HD로도 볼 수 있지만 8K(7680x4320) 정도의 해상도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며 "속도가 더 빠른 5G 시대는 더 많은 VR 콘텐츠가 생길 발판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오는 2019년 3월을 5G 상용화 목표 시점으로 제시했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는 5G망 구축을 위해 장비 협력사 선정 작업에 한창이다. 이통 3사는 내년 3월에 5G 서비스를 동시에 상용화하는데 합의했다.
최근 더 베레스트의 사무실에는 새 식구가 생겼다. 직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고양이다. 권 대표는 이 고양이마저도 콘텐츠의 소재로 삼았다. 그는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고양이와 노는 영상을 올렸더니 반응이 좋다"며 "항상 콘텐츠 소재에 대해 고민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제작사들과의 협업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권 대표는 "아이치이에 다른 제작사들의 콘텐츠도 우리가 공급할 수 있다"며 "협업을 원하는 국내 콘텐츠 제작사들은 언제든지 찾아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약 한 시간동안 그와 대화를 나누며 그의 머릿속은 온통 영상 콘텐츠로만 가득 차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터뷰를 마친 권 대표는 금요일 저녁이었지만 동료들과 콘텐츠 제작에 대해 회의를 한다며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박현준 기자 pama8@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