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영지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를 받는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의 구속 여부에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일부 현직 판사들이 검찰 압수수색 영장 청구 및 소환조사 이후 기존 재판 업무에 배제돼 재판 업무 혼선이 우려되고 있다.
20일 법원에 따르면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 최희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와 박상언 창원지법 부장판사 등 일부 판사들이 지난 6월 이후 맡고 있던 기존 재판 업무에서 손을 뗐다. 이들에겐 재판 연구나 민사 신청사건 등으로 사무 분담이 재배당됐다.
이 부장판사는 일선 업무에서 배제돼 재판연구를 하고 있고, 최 부장판사는 민사합의부에서 민사신청으로 옮겨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박 부장판사와, 김민수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상판사는 민사단독부에서 '사법연구'업무로 발령이 난 상태이다. 사법연구의 경우 아예 재판 심리에서 배제되고, 민사단독 역시 2-3일 내에 끝나는 사건을 맡아 심문기일 이외에는 재판에 나가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원 관계자는 “(재판 업무를 빼달라는) 본인 의사뿐만 아니라 법원 내 법관 사무분담 지침에 따라 더 이상 재판 업무를 맡는 게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면 원장, 수석부장 등에 의해 결정된다”며 “이전 형사사건에 연루됐을 경우나, 법관 개인의 건강이나 해외연수 등의 사유로도 종종 사무분담이 있다”고 설명했다.
법원에는 예비 인력이 없기 때문에 일부 판사들이 업무에서 배제되면 해당 업무를 다른 판사들이 나눠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지방법원의 한 판사도 “이번 사건으로 사무 분담이 이뤄지면 아무래도 다른 판사들의 업무가 가중된다”고 말했다.
사법농단 연루 판사가 맡았던 사건의 변호사도 “당시엔 재판장이 사법농단에 연루됐는지 몰랐는데 당시 증인신문이 예정된 기일이 갑자기 변경된 적이 있다”며 “시간을 더 주겠다며 미뤄졌는데 증인들도 다 나와서 진행해도 됐는데 불필요한 기일 변경이라고 생각했었다. 오히려 재판장이 변경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반면 재판 개입 관련 문건 작성이나 검찰 수사기록을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혐의 등을 받는 일부판사들은 여전히 재판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 재판 당사자들의 불만이 우려될 가능성도 크다. 또 대법원 징계위원회가 징계를 청구한 13명의 판사 이외에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자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고, 징계로 정직이 결정되거나 기소로까지 이어질 경우 법원 업무에 혼선이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재판 당사자들에게도 큰 영향이 있을 수 있는 사안”이라면서 “사상 초유의 사태인만큼 여러명의 법관의 업무배제가 가능할 수도 있는데 재판 당사자들의 재판 지연이나 불리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게 법원에서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사법 농단' 의혹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지난달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최영지 기자 yj113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