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정치인의 역할, 유명인의 역할

입력 : 2018-10-16 오전 6:00:00
흔히들 10월을 ‘수확의 계절’이라고 한다. 농부는 추수를 하고 스톡홀름 소재 노벨위원회에서는 우수 연구자들에게 노벨상을 수여하며 노고를 격려한다. 그러나 한국의 10월은 언젠가부터 고성이 오가는 국회 국정감사 철로 변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국감 초반부터 각종 진풍경들이 벌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손혜원·바른미래당 김수민 의원은 일부 야구 선수들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병역특혜를 받았다며 관련 스포츠계 비리를 파헤치겠다고 나섰다. 특히 손 의원은 국가대표 야구팀 선동렬 감독을 불러 꾸짖는 장면을 연출했다. 한 때 대한민국 야구계를 풍미했던 대 선수이자 국가대표 감독을 다루는 방식을 놓고 뒷말들이 나온다.
 
지난여름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야구선수 선발을 둘러싸고 한국은 시끄러웠다. 병역 이슈는 한국의 청년들에게 민감한 사안이라 국감에서 다뤄야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판단에는 공감한다. 그렇다면 본질을 찌르는 질문을 준비해야 했지만 손 의원은 그렇지 못했다. 몇몇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켰지만, 손 의원은 달이 아닌 손가락을 봤다’는 평가도 내놨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기에 조금은 과한 비난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이 일은 전적으로 손 의원 자신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손 의원이 국감장에 들어가기 전 요점이 무엇인지만 다시 정리했어도 훨씬 나은 질의가 이뤄질 수 있었다고 본다.
 
많은 이들이 국회의원들의 자질 문제를 거론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정치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보다는 다른 분야에서 이름을 알린 유명인을 데려오고 이들은 이른바 ‘스타정치’를 하는 경우가 많다. 광고·홍보분야 전문가이자 각종 문화예술 분야에도 조예가 깊은 손 의원의 경우 몇 년 전부터 민주당 당명·로고 등을 제작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 공로를 인정받고 여러 가지 당내 상황이 얽히며 손 의원은 민주당 공천장을 받았고 지역구 의원이 됐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프랑스에는 멋진 광고·선거캠페인 카피로 정치인들의 사랑을 수십 년 간 받아온 광고계의 황태자가 있다. 자크 세겔라(Jacques Seguela)가 그 주인공이다. 세겔라는 49세에 대선에 출마해 고배를 마시고 고전하던 프랑수아 미테랑(Francois Mitterrand)을 결국 65세에 대통령이 되도록 만들었다.
 
세겔라는 본래 약학 박사학위를 받고 약국을 운영하다 그만두고 파리 마치(Paris Match) 리포터로 활동했다. 언론사 생활 중 사진의 중요성을 인식했으며 석간신문 프랑스 수아르(France Soir)로 옮겨 3년 간 일하면서 언어의 기술을 익혔다. 그 후 병역을 복무하면서 군사저널 T. A. M(Terre Air Mer: 육·공·해군)에서도 일했다.
 
이후 세겔라는 1960년 자신의 광고회사를 차려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1977년 사회당 소속 미테랑과 리오넬 조스팽(Lionel Jospin)의 선거 캠페인·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진두지휘했다. 1981년 대선에서는 레옹 블룸(Leon Blum)이 1936년에 했던 연설에서 영감을 얻어 ‘고요한 힘(Force tranquille)’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어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미테랑이 대통령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1988년 미테랑의 재선 캠페인에서는 펩시 광고인 ‘펩시시대’에서 영감을 얻어 ‘미테랑시대’라는 슬로건을 만들어 재차 성공했다. 이처럼 세겔라는 미테랑이 대통령이 되는데 일등공신이었고 ‘미테랑 사람’이라고 들을 정도로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사회당에 한 번도 소속된 적이 없다.
 
그는 정치계뿐만 아니라 상업계의 광고로도 유명하다. 시트로앵 자동차와 까르트 누아르 커피, 루이뷔통, 에비앙 등의 광고를 제작했으며 현재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재임 중인 2008년 세겔라의 공로를 인정해 프랑스 최고훈장인 레지옹 도뇌르(Legion d'honneur)를 수여했다.
 
이처럼 세겔라는 정치인들의 선거 캠페인 전략가로서 눈부신 수훈을 세워 공로를 인정받았지만 정치인으로 변신한 적은 없다. 현재 84세인 세겔라는 광고인으로서 세계 광고계의 대부로 활약하고 있다.
 
프랑스와 한국의 문화는 분명 다르다. 그러나 아무리 다르다 해도 정치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이제 우리 문화를 바꿔야 할 때다. 한 분야의 스타는 그 분야의 스타로 남아 기여할 수 있게 내버려 두고 정치는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 해 나가는 성숙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유권자의 변화가 필요하다. 유명인들만을 선호하지 말고 묵묵하게 일할 수 있는 일꾼들에게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
 
스타들도 잔뼈가 굵은 자신의 영역을 끝까지 고집하는 장인정신을 간직할 줄 알아야 한다. 스타가 된 후 마지막에 하는 것이 절대 정치가 아니다. 정당들도 이점을 명심하고 유명인을 후보로 영입해 인기몰이만을 일삼지 마라. 이러한 변화가 없다면 한국정치는 절대 탈바꿈할 수 없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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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