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소신있는 정치인이 정치 바꾼다

입력 : 2018-09-04 오전 6:00:00
지난 해 5월, 프랑스인들은 구습에 젖은 조국을 혁신할 구원투수로 39세의 에마뉘엘 마크롱을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엘리제궁에 입성한 마크롱 대통령은 기존 정당과는 다른 신생정당 ‘전진하는 공화국’을 창당하고 시민사회 등에서 새 인물을 대거 등용함으로써 정치 혁신을 모색하는 듯했다. 그러나 1년2개월이 지난 지금 마크롱호는 어떤 항해를 하고 있을까.
 
지난 달 28일 정부 서열 3위인 환경부 장관 니콜라 윌로(Nicolas Hulot)가 갑자기 사임하면서 마크롱호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마크롱 대통령이 혁신을 약속하고 자유를 보장했기 때문에 장관직을 수락했다는 윌로는 라디오 방송 <프랑스 엥테르(France Inter)>와의 인터뷰에서 “마크롱 정부는 여전히 로비스트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어 자신의 계획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나는 정부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더 이상 나 자신을 속일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윌로는 “이는 순전히 스스로 내린 결정”이며 “이 결정을 마크롱 대통령과 에두아르 필리프 수상에게 미리 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만약 그들에게 알렸다면 필시 만류했을 것”이라며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우정과 존중의 뜻을 다음과 같이 표시하기도 했다. “나의 사임이 교훈이 되고, 각자 자기 책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데 유용하게 쓰이길 바란다.”
 
윌로 장관은 사임을 장시간 숙고했고, 마침내 지난 달 27일 밤 결정을 내렸다. 사임동기를 그는 “환경은 마크롱정부의 당면과제가 아닌 것을 느꼈다. 그러나 이 주제(환경)는 다른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이 혼란스런 기후변화에 대항하는 경제 모델을 유지하기 위해 전력질주했다…우리는 종종걸음으로 달려왔고, 프랑스는 다른 나라들보다 더 많이 전진했다. 그러나 ‘이 종종걸음이 충분하냐’라고 묻는다면 그에 대한 대답은 노(no)이다”라고 덧붙였다.
 
“나는 내 귀중한 시간을 스테판 트라베르(농수산부 장관)와 싸우면서 보낼 수 없다. 이 정부 안에서 환경쟁점에 맞춰 작전을 세우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는 말도 남겼다. 그는 “(장관으로 있는 동안) 로비의 기로에 있었다. 왜냐하면 로비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라고도 개탄했다. 윌로 장관은 마크롱 대통령의 측근인 사냥 찬성자·로비스트 티에리 코스트(Thierry Coste)가 지난 달 27일 밤 사냥 개혁을 위한 엘리제궁 모임에 참석한 것도 좋게 평가하지 않았다. 전국 사냥꾼연합의 최측근이기도 한 코스트는 정기적으로 사냥문제와 농촌문제 등에 관해 마크롱 대통령에게 조언을 했다. 코스트는 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과 2012년 프랑수와 올랑드 대통령의 측근이기도 했다.
 
윌로 장관의 사임소식을 들은 정계의 반응은 다양했다. 정부대변인 뱅자맹 그리보(Benjamin Griveaux)는 <BFM TV>에서 윌로의 사임 방식을 문제 삼고 “최소한의 예의는 먼저 대통령과 수상에게 미리 알리는 것이었다”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공화당 대표인 로랑 보키에(Laurent Wauquiez)는 “나는 윌로와 전적으로 의견을 같이 하지는 않지만, 오늘날 많은 프랑스인들이 공약을 잘 지키지 않는 것을 느끼듯 그도 에마뉘엘 마크롱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있음을 이해한다”고 밝혔다. 유럽 녹색당의 야니크 자도(Yannick Jadot)는 “니콜라 윌로가 사임한 것은 이 정부에서 환경정책이 부재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2017년 대선에 나가는 것을 포기한 윌로는 같은 해 5월 마크롱 대통령이 자신을 환경부 장관에 임명하자 고심 끝에 수락했다. 이후 노트르담 데 랑드 신공항 건설계획 무산, 프랑스 내에서의 탄화수소 생산 종료, 농업용 글리포세이트 사용의 점진적 금지, 2025년까지 원자력에 의한 전기생산량 50%로 감소 등의 실적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윌로 장관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었다. 권력 서클 내에 로비가 팽배해 뜻을 이룰 수 없자 결국 정부를 떠나는 쪽을 택했다. 프랑스인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윌로 장관의 이러한 결정은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에도 큰 타격을 줬다.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순식간에 5%포인트 하락해 취임 후 최저치인 34%를 기록했다. 구습을 타파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한 마크롱정부가 로비에 의한 구태의연한 정치를 하자 윌로 장관은 이를 고발하기 위해 사임함으로써 정부에 일침을 가했다.
 
여기서 한국 정치를 한 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와 같은 시기에 탄생한 문재인호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최악의 고용절벽으로 그 동안 높은 지지를 받았던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여론조사기관에 따라 최저 40%대까지 떨어졌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사이의 갈등설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 등을 둘러싸고 두 사람의 견해가 다르다는 설이 분분하다. 그러나 정부는 ‘완벽한 팀워크’로 봉합만 하려고 든다. 차라리 봉합보다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리는 용기가 지금 이 단계에서는 더 나을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봉합만 하려들면 나중엔 약도 쓸 수 없는 최악의 경우를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개혁은 용기 있는 정치인이 진실을 말할 때 이뤄지는 법이다. 윌로 장관처럼 그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고 소신에 따라 진실을 말해 주는 정치인이 우리 정부에서도 나와줬으면 하는 마음은 다름 아닌 이러한 이유에서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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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