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첼 야마가타 “'연결'된 느낌 주는 한국, 음악 생활에 치유제”

“뉴욕에 있지만 한국 모두와 '연결'…음악은 감정을 자석처럼 당기는 것”

입력 : 2018-10-19 오후 5:18:48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마치 오래 전 다녀온 제 여행의 사진을 본 느낌이랄까요.”
 
세계적인 뮤지션 레이첼 야마가타(Rachael Yamagata)는 최근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새 EP ‘포치 송스(Porch Songs)’을 이렇게 빗대주었다.
 
“사진 속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당시 주변 환경이 궁금해지는 감각과 비슷하다고 봐요.” “제 과거 모습을 반영하는 곡들이죠. 제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보다는요.”
 
지난 12일 전 세계에서 한국에 가장 처음으로 발매된 음반은 1000장 한정판(국내)으로 제작됐다. 지난 몇 년에 걸쳐 녹음했지만 제대로 완성되지 않았거나 적절한 발매 시기를 찾지 못했던 작품들을 엮었다. 
 
야마가타는 “지난해 상실을 비롯한 급진적인 삶의 변화를 겪었고 실질적인 의미로 최근에는 가장 ‘혼자’인 상태가 됐다고 볼 수 있다”며 “그렇다고 앨범 수록곡들이 외로움에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과 커넥션, 고통과 외로움의 해방 등 어떤 ‘갈망’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사와 음악의 아름다운 점 중 하나는 각자가 가진 감정의 무게를 자석처럼 당겨 어딘가로 보내준다는 점이에요. 듣는 이로 하여금 어떠한 감정의 무게를 가볍게 해주거나, 공감대를 형성하게끔 도와준다고 생각해요.”
 
미국 싱어송라이터 레이첼 야마가타. 사진/뉴시스·에이아이엠
 
평소 한국과의 연을 꾸준히 맺어온 그의 흔적은 수록곡 곳곳에 묻어 있다. 올해 초 인기 드라마였던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주제곡 '비 섬바디스 러브(Be Somebody's Love)'를 비롯해 사진작가 김중만를 위한 트리뷰트곡 ‘중만스 테마(Jungman's Theme)’, 한국에만 독점 공개됐던 ‘워스리스(Worthless)’ 등이 실렸다.
 
'비 섬바디스 러브'를 실은 특별한 이유는 곡 자체의 순수한 느낌 때문이다. “저는 항상 이 곡이 사랑을 위해 별에 소원을 빌거나, 완벽한 한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며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나를 위한 단 한 명의 소울메이트가 있다는 것을 믿는 것에 관한 곡이에요.” 
 
야마가타는 이 곡 작업 당시에도 이남연 음악감독과 예술적 공감을 자주 나누곤 했다. 이 감독은 드라마의 캐릭터와 스토리의 범위에 관한 명확한 지식을 그와 공유했다. 야마가타는 “함께 작업하면서 새로운 것을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색다른 경험이었다”며 “이 작업을 하면서 진정한 사랑은 시간과 변화를 초월할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를 깊게 생각한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수록곡 ‘중만스 테마’는 평소 소중하게 생각해 온 김중만과의 우정에 관한 곡이다. 야마가타 자신이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위해 쓴 곡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김중만)는 대단히 헌신적이고 감정적으로 풍부한 예술가죠. 그가 단순한 것과 웅장한 것 모두에서 아름다움, 슬픔을 볼 수 있는 점을 사랑해요. 이 곡을 통해 그의 마음과 연결되고 싶었어요.”
 
미국 싱어송라이터 레이첼 야마가타. 사진/소니뮤직코리아
 
고독한 정서를 음악으로 그려온 것과는 달리 그는 평소 외로움을 잘 타지는 않는다. 오히려 혼자 있는 상태를 꽤 편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사실 외로움을 잘 안 느껴요! 물론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는 갈망이나 이해받고 싶다는 감각은 우선 순위에 있는 편이에요.”
 
그의 음악이 한국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요인은 ‘문화적 다양성’에도 있다. 일본계 3세인 미국인 아버지와 독일·이탈리아계 혼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이를 ‘운’이 좋았다고 여긴다. 
 
“2살 무렵 친부모님이 각각 재혼을 하셨기 때문에 저는 사실 4명의 부모님 밑에서 자라온 거죠. 각기 다른 네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셨고, 각각 제 삶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셨어요. 제 다문화적인 배경이 제가 전 세계를 여행하게 하고, 우리를 유사한 형태로 연결시켜주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2009년 첫 내한 공연 이후 2011~2016년 6년간 꾸준히 한국을 찾은 야마가타는 내한 때마다 공연 매진을 기록해 왔다. 2015년 내한 당시에는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하며 한반도 분단에 깊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최근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잇달아 열리는 상황도 유심히 지켜봤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분단 상황 때문에 겪는 고통에 대해 오랜 시간 동안 보고 들었다”며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으면 하지만 이 복잡한 면들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코멘트를 하는 건 조심스럽다. 다만 희망이 살아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앨범 발매를 기념해 오는 11월에는 10번째로 한국을 찾는다. 11월6~7일 부산 동아대 부민캠퍼스 다우홀에서, 11월9~10일 서울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에서 총 4회 차례 공연을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전석 매진으로 서울 올림픽공원 뮤즈 라이브홀에서의 공연(11일)을 1회 추가했다. 
 
올해 초 진행한 미국 솔로 투어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이번 공연은 전과 달리 밴드 없이 무대에 홀로 설 예정이다. “혼자 투어를 돌고, 관객들 앞에서 솔직한 모습을 보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매일 밤이 나를 좀 더 강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놀랐죠. 그 경험을 한국에서도 그대로 팬들과 느껴보고 싶습니다.”
 
레이첼 야마가타. 사진/소니뮤직코리아
 
야마가타는 늘 ‘주변’과의 연결을 중시한다. 한국 팬들과의 두터움도 ‘연결’돼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그는 한국 팬들이 그의 솔직함과 연약함에 공감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 “한국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하나 있어요. 공연장 안의 관객들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정말 짜릿했죠.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어요. 그 순간 보안 때문에 비워뒀던 첫 번째 열의 좌석에 올라갔었죠. 우린 객석에서 연주했어요. 마법 같은 순간이었죠.”
 
뉴욕 우드스톡에서 답변을 처리하다 그는 이런 생각도 꺼내 든다.
 
“지금 여긴 한밤 중이에요. 뉴욕에 있는 우리 집 테라스죠. 여기 앉아 (인터뷰 답변을) 적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한국에 있는 모두와 연결돼 있음을 느끼고 있죠. 한국에서의 경험은 항상 세상 어디에 있는지 상관 없이 ‘우리가 연결돼 있음’을 알게 해줘요. 나를 회복시키는 느낌이에요.”
 
“한국 팬들에게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려주고 싶어요. 그들은 나를 치유해주고, 사랑한다며 스스로를 표현해주는 용기 덕에 저는 외롭지 않아요. 벌써 10번째 내한 공연인가요? 오마이갓! 100번째 공연까지 가고 싶네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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