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들은 지난해 5월 지금까지와는 다른 정치를 희망하면서 39세의 신인 에마뉘엘 마크롱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이후에도 기성정당과의 연결고리를 끊고 새로운 역사를 쓸 것 같은 기대감에 한동안 마크롱 대통령에게 많은 사랑과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마크롱정부가 출범한지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많은 프랑스인들은 점점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
배베아(BVA)가 조사하고, 라디오 방송 에르떼엘(RTL)이 지난 26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프랑스인 중 29% 만이 마크롱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다. 반면에 에두아르 필리프(Edouard Philippe) 수상 지지율은 40%로 높아져 대통령과 수상 간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이 같은 사태의 주요 원인은 마크롱 대통령의 잦은 언론노출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마크롱 대통령의 언행은 각종 논란을 빚기 일쑤였다. 응답자 38%는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인들을 향해 너무 자주 이야기한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마크롱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로는 ‘오만’하고 ‘경박함’을 들었다.
계속되는 지지율 하락에 위기의식을 느낀 마크롱 대통령은 결국 개각을 단행한 직후인 지난 16일 밤 TV에서 자신의 잘못을 대범하게 고백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때때로, 나는 확고한 태도와 꾸밈없는 말로 일부 사람들을 동요시키고 놀라게 했다. 그래서 나는 비난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각과 대통령의 연설에 대한 비난은 잦아들지 않았다.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입이 무겁기로 유명한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Valery Giscard d’Estaing) 전 대통령이 지난 18일 라디오방송 <유럽 1> 인터뷰에서 이번 개각 내용을 언급했다. “개각이랄 게 없다. 보다 더 큰 변화가 있어야 했다. 6,7명의 장관은 바꿨어야 했다. 따라서 개각이라 할 것도 없는 개각으로 프랑스 정치계를 흔들었다. 침착해야 한다. 다른 관계자들을 흥분 상태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러면서 “황제가 흥분하면, 백성은 병든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 시간을 가지고 냉정함으로 논란을 다스려야 한다. 당신(마크롱)에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다. 왜 그들이 동의하지 않는지 시간을 갖고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만약 그들을 설득하지 못한다 해도 그래도 설득해야 하고, 그들이 여당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데스탱 전 대통령은 현재 프랑스가 개혁하기 매우 어려운 나라인 점은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혼란은 마크롱 대통령의 정치적 경륜이 부족한데서 기인한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에마뉘엘 마크롱이나 브뤼노 르 메르(Bruno Le Maire, 현 경제부 장관) 등 대통령 선거의 오픈 프라이머리 주자들은 두루 관통하는 ‘경험’을 쌓은 후 선거에 나왔어야 했다. 충분히 긴 시간 장관을 하지 않은 사람은 공화국의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도 평가했다. 제5공화국 대통령 중 가장 인기가 없었던 프랑수아 올랑드(Francois Hollande) 전 대통령도 장관을 지낸 적이 없었고, 마크롱 대통령은 장관을 지냈지만 아주 짧았다. 데스탱 전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이 관리 능력이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자신은 1974년 대통령이 되기 전 9년 동안 프랑스의 재정을 관리했던 사실을 상기했다. 그는 “먼저 젊은이들이 정치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한 국가의 운명을 책임지는 대통령은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 필수다. 마크롱 대통령의 신선함에 프랑스 국민은 환호를 보냈지만, 까다로운 프랑스를 휘어잡고 끌고 나가는 리더로서의 관리 능력은 부족했다.
한국의 많은 대통령들이 실패한 이유도 이와 유사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새 정부가 탄생하고 2년 차로 들어선 지금 언론들은 차기 대선주자들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고 있다. 10여 명이 리스트에 올라 거론되고 있지만 그들 중 데스탱이 말한 것처럼 장기간 장관을 지내고 두루 경험을 쌓은 능력 있는 정치인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현 정부는 장관들을 좀 더 전면에 내세워 주목받게 하고 차기 주자로서 기량을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한국 정치의 특성이긴 하지만 각 부처 장관들은 무엇을 하는지 우리는 좀처럼 알 길이 없다. 그들을 전면에 내세워 지금보다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을 주고 국민의 평가를 받게 해야 한다.
프랑스는 여론조사로 대통령뿐만 아니라 수상, 장관들의 지지율까지 측정한다. 이러한 조사에서 지지율이 높은 장관들은 차세대 주자로 떠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다. 우리도 능력 있는 차세대 지도자들이 탄생할 수 있도록 프랑스와 같은 시도를 할 수 있으면 한다. 정치가 발전하려면 국민들로부터 촉망받는 정치인들이 많아야 한다. 이번 정부는 이 점을 명심해 각료들 중 촉망받는 리더가 배출 될 수 있도록 정치문화를 혁신하기 바란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