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김동연·장하성 ‘경제 투톱’을 홍남기 ‘원톱’으로 교체하고, ‘왕수석’으로 불린 김수현 사회수석을 정책실장으로 승진임명한 것은 포용국가 비전실현을 위한 결단으로 해석된다. 디테일한 경제정책은 전문가인 경제부총리에 주도권을 주고, 포용국가의 큰 그림은 청와대의 장악력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문 대통령의 ‘함께 잘 사는 포용국가’는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 등 3대 경제정책의 성과를 통해 ‘포용적 경제’를 실현하고, 경제·사회적 격차 해소와 저출산·고령사회 극복을 위한 종합 사회안전망 확충으로 ‘포용적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 김동연·장하성 투톱은 소득주도성장을 둘러싼 엇박자를 이어갔고, 혁신성장에도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 사이 한국경제는 투자·고용·내수 부진과 미중 무역갈등과 같은 외풍에 시달렸다. 국내 노동인구감소라는 구조적 문제까지 겹쳐있다. 결국 문 대통령의 이번 인사는 인적쇄신으로 분위기를 일신하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경제·복지 성과 창출에 전력투구하겠다는 각오로 해석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후보자는 11일 오후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 건물로 출근해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에 들어갔다. 이달 말 또는 내달 초로 예상되는 청문회에서는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인상, 주52시간제 도입 등 정부 경제정책의 실효성을 두고 여야 질의가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만성간염으로 인한 홍 후보자의 군 면제 역시 쟁점이다.
홍 후보자는 기자들과 만나 ‘침체된 한국경제 활력 찾기’를 최우선과제로 꼽고 장기적으로는 ‘경제구조개혁을 통한 잠재성장률 끌어올리기’를 핵심과제로 거론했다. 경제정책의 속도전도 강조하면서 “선진국에서 보편적으로 이뤄지는 서비스라면 대한민국에서 못할 바 없다”며 공유경제와 같은 기존 산업계의 반발이 큰 이슈도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특히 홍 후보자는 혁신성장에 대해선 “성과를 내도록 속도를 바짝 내겠다. 본격적으로 펌프질을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소득주도성장에는 “추진하되 논쟁보다 의도하지 않은 일부 문제점을 조정·보완해 나가야한다”고 했다. 여야 전선이 형성된 소득주도성장보다 혁신성장에 더 무게를 두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이 김수현 사회수석을 정책실장으로 승진임명한 것은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포용국가’ 기조를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김 실장은 사회수석 시절 보건복지, 환경, 교육문화, 여성가족, 부동산, 에너지 등 사회정책영역 전반을 담당했고, 문 대통령의 신임도 두터워 ‘왕수석’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러한 김 실장의 전면배치는 사회정책에 있어서는 지금의 기조를 이어가고 강화하겠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동시에 김 실장이 경제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을 오히려 높이 평가한 것으로 해석된다. 전임 장하성 전 실장과 달리 김 실장은 사회복지 및 부동산분야 전문가로 분류되며 경제분야 전문가는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결국 김 실장의 등용은 경제정책 주도권을 두고 경제부총리와 정책실장이 충돌하는 제2의 김앤장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김 실장이 결국 주도권을 쥐고 홍 후보자와 충돌을 재현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렇지만 홍 후보자는 김동연 부총리와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평가다. 현 정권핵심들과 별다른 인연이 없는 김 부총리와 달리 홍 후보자는 노무현정부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과 일했고, 이낙연 국무총리를 보좌했으며, 임종석 비서실장의 한양대 대학동문이다. 왕수석을 뛰어넘는 실세 부총리 이야기마저 나온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홍 후보자를 소개하면서 “정부 출범 이후 이 총리와 호흡을 맞추며 국무조정실장을 맡아왔다”며 “70여 차례 지속된 이 총리의 문 대통령 주례보고에 배석해 누구보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고, 이 총리의 강력한 천거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김수현 신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이 11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