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한국은 사회적 가치의 전성시대처럼 보인다. 현 집권당인 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작년 10월에 사회적 가치 기본법이 발의된 상태이고,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중 12번째 국정 과제로 '사회적 가치 실현을 선도하는 공공기관'을 설정하고 정부 산하 공기업 및 공공기관에 대한 사회적 가치 평가를 실행하고 있다. 올해는 한발 더 나아가 지난 3월 정부혁신 종합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정부, 공공기관 내 사회적 가치 창출 확산을 위한 로드맵을 수립하였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대상은 중앙부처, 지자체, 교육행정기관, 국가 및 지방공기업 등 전 공공 부문이 망라되어 있으며, 2019년 2월 성과 점검 및 4월 정부혁신 평가 완료를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비록 현재의 보수 야당이 사회주의 법이라는 이념적 공세를 통해 해당 상임위 내의 소위원에서조차 논의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 정도면 기본법의 통과 여부와 상관없이 정부의 행정력만으로 충분히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사회적 가치 기본법과 현 정부의 사회적 가치 추진 전략과 방향은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며, 현장에서의 사회적 가치 논의 현황도 정부의 의도와는 다르게 다소 왜곡되고 있다.
사회적 가치 기본법의 제안 배경을 보면 사회적 가치를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는 가치로 규정하면서 사회적 경제,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공유가치창출(Creating Shared Value) 등 사회적 가치 실현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이 증가하고 있으나, 공공기관의 공공성에 대한 국내외 평가는 낮은 수준이며 국민적 신뢰도 또한 미흡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의 개선을 위해 사회적 가치 실현을 공공부문의 핵심 운영원리로 삼고, 업무수행 시 이를 체계적으로 실행하도록 함으로써 공공부문부터 사회적 가치 실현을 선도하고 나아가 민간부문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기본법을 제정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런 제안 배경은 몇 가지 아쉬움이 남는데, 우선 배경 자체가 너무 국내적인 시각에 머물러져 있다는 점과 언제 어떻게 민간부문으로 확산시킬지에 대한 청사진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조직의 사회적 가치 추진은 갑자기 국내적으로 그 중요성이 증폭된 것이 아니다. 이미 국제적으로 현시대의 성장을 위한 사회·문화·경제 시스템은 다음 세대를 위한 지속가능발전 시스템으로 변화되어야 하며, 그 구체적인 목표가 지속가능발전 목표로, 그 수단은 모든 조직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ISO26000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제안 배경에는 전혀 그런 부분이 나타나지 않고 있기에 보수층에게는 '사회'라는 말도 받아들여지기 힘든데 '가치'란 말까지 보태어져 있고, 그 대상을 공공기관으로 설정했으니 현재와 같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기본법에 또한 부족한 부분은 사회적 가치 창출에 대한 프로세스가 구체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즉, 사회적 가치 세부 유형이 어떤 방식으로 이행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이 제시되지 않아 '사회적 가치'에 대한 다양한 해석, 추측,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공격을 당하기 딱 좋은 형세다.
또한 정부혁신 종합추진계획도 국민 참여를 통한 창의적이고 업종 특성이 반영된 사회적 가치 활동을 표명하고 있지만, 공공기관 경영평가 지표와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에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방향, 이행 프로세스, 성과지표 등이 각각 상이하게 제시되어 있고, 사회적 가치 활동 및 평가지표의 정성지표 평가 방식 또한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다. 이런 정부의 추상적인 전략, 방향 및 평가방식은 현장에서의 왜곡도 발생시키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공공기관의 경영평가에 대한 대응 행태이다.
올해부터 공공기관은 나라장터를 통해서 사회적 가치 창출 전략과 보고서 발간이라는 용역을 대거 발주하고 있는데, 이 용역을 수행하는 컨설팅기관이 공공기관의 경영평가 중 사회적 가치 영역의 서류 작업을 대행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현장에서는 서류만 잘 준비하면 사회적 가치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을까? 필자는 사회적 가치 기본법과 정부 정책에서 조직의 사회적 책임경영 관점의 빈곤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사회적 가치는 해당 조직의 사업 성과뿐만 아니라 조직의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부정적 임팩트를 줄여 리스크는 줄이고 기회요인을 증폭시킨 운영 성과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이런 전제조건 없는 사회적 가치 추진은 사업성과 중심인 정량적 평가를 주를 이루게 될 것이며, 기업으로의 확산은 고사하고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추진에 대한 반대여론의 빌미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근래 시도되고 있는 지자체의 사회적 가치 움직임 또한 자칫하면 자신들이 실행한 행정정책에 대한 성과 중심으로의 자화자찬식 정보공개가 주를 이루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사회적 가치의 전략을 모든 조직의 사회적 책임과 가치 창출이라는 양 날개의 균형을 맞추어야 하며, 민간부문으로의 확산을 위해 개정된 산업발전법에서 요구하고 있는 지속가능경영 5개년 종합시책을 시급히 수립하고 발표해야 한다.
박주원 지속가능경영재단 CSR경영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