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지금까지 성적표는 의미가 없다

입력 : 2018-11-23 오전 6:00:00
올해 누계 무역액이 11월16일 13시24분 기준으로 역대 최단 기간 1조달러를 돌파했다. 1956년 무역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빠르다.
 
무역 1조달러 돌파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이다. 현 추세대로라면 2014년 1조982억달러의 연간 무역액 기록도 넘어설 전망이다. 분명 기쁜 소식이다.
 
하지만 21일 한국무역협회의 '단일국 수출기업의 현황과 수출성과 분석' 보고서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 보고서에 따르면 수출 기업의 50.3%가 단일국가 즉 1개국에 수출하고 있고, 이들 기업의 35.9%는 미국이나 중국이 대상국이다.
 
또 수출 대상국이 2개 이상 기업들의 5년과 10년 생존율은 각각 45.2%와 33.4%였으나, 단일국 수출기업의 생존율은 21.3%와 14.1%에 그쳤다. 이제는 한 곳에 한 종류의 제품을 팔아서는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이런 와중에 내년이면 전 세계 인구의 절반과 GDP 3분의 1을 차지하는 거대 경제 블록이 탄생한다. 이름하여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지난 2012년 11월20일 동아시아 정상회의(EAS)를 계기로 협상이 시작된 이래 7년만에 타결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글로벌 경제 패권 놓고 격돌하고 있는 사이 미국이 주도하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무산된 것도 RCEP 타결에 속도가 붙은 이유로 꼽힌다. 
 
솔직히 한국은 지금까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무한 경쟁의 시대에 재미를 톡톡히 봤다.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 등과의 FTA로 수출 주력 품목의 관세를 하나씩 걷어내면서 경쟁력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RCEP은 상황이 다르다.
 
아세안 10개국과 아세안과 FTA를 체결한 한국, 중국,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 16개국이 하나의 경제 틀에 묶이는 메가 경제공동체가 바로 RCEP다. 무엇보다 RCEP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들의 성장 잠재력이 크다. 유엔의 2017년 통계에 따르면 국가별 중위연령에서 인도와 아세안 국가가 얼마나 젊고 생산력이 높은지 알 수 있다. 인도는 26.7세, 아세안은 29.2세다. 반면 한국은 40.8세, 일본 46.3세, 미국은 37.6세다. 중년의 한국, 일본, 미국과 달리 RCEP 국가들은 청년인 셈이다.
 
거대한 시장의 엄청난 기회가 다가오고 있는데 과연 우리가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RCEP은 단순한 경제공동체가 아니라 지금까지 미국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이 중국과 인도 등으로 다변화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사석에서 만한 한 통상 전문가는"무역전쟁으로 미국 수출이 어려워진 중국과 3월 체결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TP)'에 미국이 빠지면서 대체 시장을 찾아야 하는 일본 그리고  '액트 이스트(동진정책·Act East)' 정책에 공을 들이고 있는 모디 총리의 인도 모두 RCEP의 무게를 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역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중국, 일본, 인도는 서로를 가까이 하기 어려운 배경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철저하게 실리 위주의 노선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나 기업 모두 역대 최단 기간 1조달러 돌파나 사상 최대 무역액 달성에 취해 있을 여유가 없다는 얘기다.
권대경 정경부 기자 kwon21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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