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은 19일 전 특별감찰반원인 김태우 수사관의 ‘청와대 민간인 사찰 지시’ 주장에 대해 “비위 혐의자의 일방적 주장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박 비서관은 이날 오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저는 문재인정부 초대 반부패비서관으로, 저의 명예를 걸고 법과 원칙하에 업무를 수행해 왔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박 비서관은 이 대목에서 감정에 북받친 듯 목이 메었다.
먼저 박 비서관은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공개한 ‘첩보 보고서’ 목록 사진에 대해 해명했다. 김 수사관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목록에는 야권 인사를 비롯해 교수·언론·민간 기업 등에 대한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
박 비서관은 “특감반원의 문건은 반장이나 데스크 차원에서 폐기된 것도 있고, 자기가 첩보를 혼자 정리해둔 수준도 있어, 모두 보고가 됐다고 전제하면 안 된다”면서 “특감반원의 지시를 받고 첩보를 수집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역량으로 수집해 자신이 생산한 문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방통위 고삼석 상임위원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갈등설’ ▲‘주 러시아 대사 내정자 우윤근 국회사무총장 금품수수 관련 동향’ ▲‘고건 전 총리 장남, 비트코인 관련 사업 활동 중’ ▲‘박근혜 친분 사업자, 부정청탁으로 공공기관 예산 수령’ 등은 다 보고받은 문건이며, 비트코인 관련 문건을 제외한 나머지 3건은 조국 민정수석에게도 보고됐다고 밝혔다.
또 ▲‘코리아나호텔 사장 배우자 자살 관련 동향’ ▲‘한국자산관리공사 송창달 비상임이사의 홍준표 전 후보 대선 자금 모금 시도’ ▲‘조선일보, BH의 홍석현 회장의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 검토 여부 취재중’ ▲‘조선일보, 민주당 유동수 의원 재판 거래 혐의 취재중’ 등의 내용은 특감반장까지 보고된 문건이라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진보 교수 전성인, 사감으로 VIP 비난’ ▲ ‘이명박 정부 방통위, 황금주파수 경매 관련 SK측에 8천억 특혜 제공’ 등은 누구에게도 보고되지 않은 문건이라고 했다.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첩보보고서 목록 사진 자료/자유한국당
“김태우, 과거 정부 첩보 관행 못 버려 제지하기도”
박 비서관은 김 수사관의 정보보고를 시기별로 나눠서 설명했다. 우선 작년 7월11일 작성된 ‘코리아나호텔 배우자 자살’, 7월14일 ‘홍준표 대선자금 모금’에 대해선 “김 수사관이 정식 임명된 것은 7월14일인데, 특감반 초기 이전 정부에서 다양한 정보를 첩보하는 관행을 못버리고 모아서 보고했다”며 “당시 특감반장이 ‘우리 정부는 이전 정부와 다르다. 앞으로 이런 정보는 수집말라’고 제지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이후 김 수사관은 1년 동안 문제되는 문건의 작성을 안했다”고 말했다.
9월22일 ‘고삼석-김현미 갈등설’, ‘우윤근 금품수수 동향’은 관계 법령과 직무영역에 따른 적법한 과정을 거친 보고서라고 설명했고, 올해 1월 ‘비트코인 시장동향’ 자료는 “특감반원의 신분으로 감찰보고서를 작성한 것이 아닌, 반부패비서관실 소속 행정요원으로 정책정보 생산을 위한 로우 데이터(raw data)”라면서 “당시 비트코인 업계의 불법 거래 등에 대한 정책보고를 쓸 때 사용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2월22일 ‘박근혜 친분 사업가’ 자료는 “이전 정부에서 박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사업가가 현 정부에서도 공무원에 로비해 부정하게 공공기관 예산을 수령했다는 의혹이 있었다”며 “실제 그랬는지 확인하기 위해 해당 부처 감사관실에 이첩했고, 그 이후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8월경 작성된 ‘홍석현 외환거래’, ‘유동수 재판거래’에 대해선 당시 ‘과기정통부 감사관직 셀프 인사’를 시도하던 김 수사관이 대충 만든 자료라는 설명이다. 박 비서관은 “특감반원은 1주일이나 2주일에 한 건의 보고서를 써야 업무를 하는 것”이라며 “특검반장의 기억으로는 해당 내용이 ‘지라시’ 수준이었고, 언론 사찰의 소지도 있으니 작성 말라고 해서 폐기했다”고 밝혔다.
8월27일 ‘진보 교수 전성인’, 28일 ‘황금주파수 경매 관련 SK 8천억 특혜 제공’에 대해서도 “24일은 감사관직 최종 발표가 나는 시기였고, 우리가 22일 김 수사관의 그런 행위를 발견해 응모를 중단시키고, 한 달 근신기간을 줬다”면서 “두 문건은 근신기간 본인이 작성한 보고서로 추정된다. 해당 보고서에 대해 보고 받은 것이 없다”고 말했다.
“특감반에 별도 업무지시 안 해…근태만 관리”
박 비서관은 특감반이 정보조직의 특성상 점조직처럼 운영된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했다. 그는 한국당이 공개한 목록 사진을 두고 “김 수사관이 작성했는지, 진본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면서 “특감반의 감찰정보는 칸막이가 있어, 누가 뭐를 하는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또 관련 자료가 다 폐기됐다면서 “김 수사관이 수집한 정보는 데스크와 특감반장, 반부패비서관 라인만 안다”며 “특감반장과 제가 기억을 더듬고, 모르는 것은 데스크에 확인전화해 사실관계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김 수사관의 특감반 시절 출입처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며 “이번에 알게 됐지만, 특감반원의 출입처 관리는 특감반장의 고유영역”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보고 작성자에 대해서도 “보고서가 오면 내용이 중요하지 누가 썼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특감반의 업무패턴도 공개했다. 박 비서관은 “아침에 특감반원이 전원출근하면 어떤 일을 하겠다고 반장에 보고하고, 다음 날 무슨 활동을 했는지 보고하는 체계”라면서 그 외 업무지침을 내리는 등의 별도 지시는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박 비서관은 “8월 김 수사관의 ‘셀프 승진’ 등 내부문제가 발생하자 나에게도 특감반 1일보고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조국(왼쪽) 민정수석과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이 지난해 7월17일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