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영 정경부 기자
내년도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정부는 대규모 기념사업을 준비 중이다.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는 지난 14일 전체회의를 통해 기념사업 종합계획과 104개 핵심사업을 확정했다. 사업 내용에 전국단위 3·1만세운동 재현행사 개최와 ‘독립의 횃불’ 릴레이 봉송, 미국 필라델피아 제1차 한인회의 재현, 일본 도쿄 2·8독립선언 100주년 기념행사 개최 등이 포함됐다. 기념식과 학술행사 등 남북 공동사업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힘쓴 선열들의 노고를 기리자는 정부 방침에 딴지를 걸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지금까지의 정부 행사 공식이 반복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벌써부터 든다. “100주년 기념사업을 국민 참여형으로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공허하다. 100년 전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당면한 먹고사는 문제에 우선순위를 내주기 십상이다.
떠들썩한 행사가 끝난 후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국가보훈처는 지난 6일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인근 서대문구의회 청사 부지에 건립 예정인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하 기념관) 설계공모 당선작을 공개했다. 유선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가 출품한 ‘시작되는 터, 역사를 기억하는 표석이 되다’ 당선작 조감도 중 지하 1층 역사광장이 눈에 띄었다. 기념관 가운데 공간을 비워 역사광장까지 빛이 들어오도록 설계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 속, 관람객들이 가운데 지점에서 밝은 빛을 받아들을 수 있게 했다.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내 역사광장 조감도. 사진/국가보훈처
문득 서울 부암동 윤동주문학관이 떠올랐다. 인왕산 자락에 버려져있던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지난 2012년 만든 문학관 내에는 열린 우물, 닫힌 우물로 불리는 공간이 존재한다. 특히 용도 폐기된 물탱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해 만든 닫힌 우물은 직경 50cm 내외로 천장에 뚫린 작은 공간에서 빛이 들어오도록 했다. 닫힌 우물에서 관람객들이 잠시나마 침묵하고 사색할 수 있도록 했다고 문학관 측은 설명한다. 닫힌 우물에 머무는 시간 속 관람객들에게는 시인 윤동주의 부끄러움과 절제, 식민지 청년이 느꼈을 비애가 서린다.
윤동주문학관 내 열린 우물, 닫힌 우물 소개글. 자료/종로문화재단
100년 전 아픈 역사를 숙고하기 위해 기념관을 둘러본 후, 사색하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역사광장에 주목한다. 역사광장과 이곳을 비추는 빛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다른 행사들이 그저 흘러가더라도 이것 하나만으로 성공이 아닐까. 2021년 8월 개관 예정인 기념관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최한영 정경부 기자(visionch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