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북한에 대한 '상응조치' 카드로 남북 경제협력 활용을 강조하면서 귀추가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전날(19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북 사이의 철도·도로 연결부터 남북 경제협력(경협) 사업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다면 역할을 떠맡을 각오가 돼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은 긍정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북한이 영변 핵시설·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 이상의 비핵화 조치에 나설 경우 미국이 내놓을 상응조치로 남북 경협사업을 제시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언론 인터뷰에서 "대북제재 완화를 대가로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조건부이기는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제재 완화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다만 미국 내에서 대북제재 완화 카드를 꺼내더라도 당장 가시적인 조치를 내놓기는 이르다는 의견이 대두되는 것이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도 최근 "북한에 수십억 달러를 퍼주던 전철을 밟지 않겠다"며 당장의 경제지원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문제해결을 위해 한미 간 협의를 거쳐 미국이 내놓을 상응조치로 남북경협을 고려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남북 경협사업의 경우 남북 간 협의를 통해 최대한 제재를 우회하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결의를 유지하면서도 포괄적 제재 면제를 취하는 우회로도 있다. 우리 정부는 북한과 교류협력 활로를 뚫고, 미국 입장에서는 내부 비판을 일정부분 피할 수 있는 '윈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북한 측에서 '남북 경협은 미국의 협상카드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변수다.
남북 정상은 지난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각종 경협사업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당시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와 서해경제공동특구·동해관광공동특구 조성, 동·서해선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 산림분야를 포함한 남북 환경협력, 전염성 질병의 유입·확산 방지하기 위한 긴급조치 등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조건 없는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용의를 재차 밝혔지만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막혀 실질적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우리 정부는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기다린다는 입장이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20일 정례브리핑에서 "어제 문 대통령 말씀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달라. 현재로서는 특별히 그 이상으로 알려드릴 사안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민간을 중심으로 금강산관광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계속 높아지는 중이다. 특히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김 위원장의 서울답방에서 남북경협 문제가 구체적으로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남북 경협이 본격화되면 금강산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개소와 3·1운동 100주년 공동 기념행사 등 사회·문화 교류도 속도를 낼 수 있다. 남북 체육수장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내놓은 '2020년 도쿄올림픽 유도 등 4개 종목 단일팀 구성' 등의 합의가 이어질 수 있다. 3·1운동 100주년 공동 기념행사 관련해서도 백 대변인은 "현재 남북 간에 협의가 진행 중에 있다. 북측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며 "조금 더 지켜봐주기 바란다"는 말로 여지를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노영민 비서실장이 20일 청와대 본관 인왕실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관련 광주지역 원로 초청 오찬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