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역주행하는 노동존중사회

입력 : 2019-03-07 오전 6:00:00
민주노총이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연장하는 노사정 합의에 반발하며 6일 총파업에 들어갔다. 대우조선과 현대모비스 등이 참여했으나 완성차노조의 불참으로 파업의 규모나 파괴력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파업이 노동계의 조직적인 저항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상황은 심각하다. 문재인정부 출범 2년 만에 노정관계는 협력에서 대립으로 바뀌었다. 한때 밀월관계라 평가받던 노정관계가 무슨 이유로 갈등관계로 전환했는가. 지난 2년의 노사관계를 되돌아보고 그 속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자.
 
정부의 노동개혁 의지 후퇴다. 현재 노정갈등의 표면적인 이유는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와 최저임금 결정구조의 개편이다. 하지만 이들 문제들은 곁가지이고 본질은 정부의 노동개혁 의지 후퇴에 있다. 현 정부는 집권 초 경제민주화와 노동존중사회를 전면에 내세웠다. 문대통령은 취임 후 첫 방문지로 인천국제공항을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다. 연이어 최저임금을 16.4% 인상해 저임금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하고자했다. 정부의 전향적인 조치에 노동계는 박수를 보냈고 투쟁이 아닌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고자 했다. 쌍용차 등 장기투쟁 사업장의 현안 및 해고자 복직도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해결됐고, 민주노총의 요구로 노사정위원회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집권 1년을 기점으로 노동개혁은 시나브로 후순위로 밀려나고 경기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 전면에 등장했다. 경제상황의 악화로 고용사정이 나빠지자 정부는 과거와 같이 단기 성과주의의 유혹에 빠지고 산업구조 및 노동시장 개편이 아닌 정치적 이벤트에 매달린다. 5년 단임 대통령에게 이 이상을 요구하는 것이 가혹할지 모르지만 현재의 노사관계는 노동존중사회와 결별한 역주행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보자. 판단 기준이 흔들리면 원칙이 훼손된다. 한국의 노동시간 단축 요구는 경영계 주장에 흔들릴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버스기사의 졸음운전으로 대형교통사고가 다반사로 발생하고,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대기업 직장인이 자살하고, 집배원들은 우편물을 배달하다가 거리에서 쓰러진다. 초과근무와 야근으로 얼룩진 야만적인 한국 사회의 현주소다.
 
지난 몇 년의 노력으로 이제 가까스로 연평균노동시간이 2000시간 아래로 떨어졌다. 고용부에 따르면 작년 상용직 5인 이상 사업체 노동자의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1986시간으로, 전년의 2014시간보다 1.4% 줄었다. 하지만 한국의 노동시간은 2016년을 기준으로 한 OECD 연평균 노동시간(1763시간)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작년 7월부터 주 52시간제 시행에 들어갔지만, 그것도 300인 이상 사업장에 한정돼 큰 효과가 없었다.
 
상황은 이러한데 정부는 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하겠다며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 카드를 내놓았다. 현재 단위 기간이 최대 3개월이었는데 6개월로 확대하겠다는 것이 노사정 합의의 요지다. 물론 합의문에는 11시간 연속 휴식시간을 의무화하고, 현행대로 근로자대표와의 서면 합의를 거쳐 도입하도록 했다. 그런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노동자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에 구멍이 얼기설기 나 있다. 탄력근로제 관련한 세부 사안은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로 시행하기로 돼 있으나, 선출요건 등이 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용자의 뜻대로 근로자대표가 선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노동존중사회는 지난 10여 년 동안 후퇴한 노동기본권의 원상회복과 노동자의 삶의 질 개선 요구에서 촉발됐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 가까이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전체 노동자의 38.3%200만원 미만의 임금을 받는 저임금 상태를 지속해서는 경제 성장도 국민의 삶도 개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의 노동정책은 분기점에 서 있다. 기업 경쟁력 강화, 유연화, 규제 완화 등은 아무리 분칠을 해도 과거 정부의 대표 상품이다. 노사 중립이라는 정부의 태도는 과거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재벌대기업에 쏠린 힘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국민소득 3만 달러 달성이라는 뉴스 자막 뒤에는 노동자들의 팍팍한 삶이 겹쳐진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사회의 지속적인 진보를 위하여 표현 및 결사의 자유는 불가피하다. 일부계층의 빈곤은 전체의 번영에 위험이 된다” 1944년 필라델피아 선언의 일부다. 이 선언이 오늘날 한국의 노동 현실에 여전히 울림을 주는 것은 슬픈 일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roh40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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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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