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롯데그룹이 손해 볼 위험을 감수하고 금산분리를 추진 중이다. 지주회사 관련 법상 금융계열사 매각 시한에 걸려, M&A 협상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형편에서도 지배구조 문제 해결에 안간힘이다. 반대로 비지주 재벌 집단은 금산결합 구조를 고수하면서 최근 관련 규제가 느슨해지자 되레 금융사업을 키우고 나서 형평성 논란을 낳는다.
롯데 신동빈 회장이 3월 4일, 롯데월드타워 지하에 위치한 구내 식당에서 임직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신 회장은 이 날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구내 식당을 찾았다가 롯데지주 직원들의 사진 촬영에 기꺼이 응했다. 사진/인스타 캡처
롯데그룹은 금융계열사 매각 작업에 난항을 겪고 있다. 매각 시한이 오는 10월로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서도 롯데캐피탈 매각 협상을 잠정 보류하며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실적이 좋은 롯데캐피탈에만 인수희망자가 몰리자 제동을 걸었다. 롯데카드, 롯데손해보험 매각을 먼저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매각 시한인 10월을 넘기면 롯데는 과징금을 물게 된다. SK그룹이 같은 문제로 29억6000만원의 과징금을 낸 바 있다. 인수자 측은 시간에 쫓기는 롯데그룹 상황을 이용해 인수가를 낮추려 할 수 있다. 매각 기한이 가까워질수록 롯데는 불리해진다.
지주 전환 전에 팔았다면 롯데는 훨씬 유리한 조건에 매각할 수 있었다. 롯데 관계자는 “애초 팔 계획이 없었다”라며 지배구조 문제를 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팔게 된 처지를 토로했다. 당초 롯데그룹은 지주 체제 밖에 금융계열사를 두고 별도 금융그룹집단을 운용하는 시나리오가 그려졌었다. 하지만 이 경우 금산결합과 지주회사 체제 밖 계열사 등 후진적인 지배구조 문제를 계속 안게 된다. 결국 완결된 지배구조 단순화 및 투명화를 위해 금융계열사 문제를 깔끔히 정리하기로 신동빈 회장이 결단을 내린 것이다.
롯데가 시간에 쫓긴 데는 여론 영향이 적지 않았다. 문재인정부 출범을 전후해 경제민주화 여론과 관련 규제 압박이 커지면서 롯데는 지주 전환을 서둘렀다. 이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삼성의 지배구조 문제는 금산결합이라고 지목하는 등 관련 규제가 강화되며 불똥이 옮겨 붙자 롯데는 금산분리 결단에 이르게 됐다.
하지만 최근 경제활력을 위한 선택적 규제 기조가 조성되고 국회도 여야 대치로 법안처리가 늦춰지면서 재계 압박도 느슨해진 형국이다. 그 사이 비지주 재벌 집단에서는 지주 전환 움직임이 멈췄고 한화가 롯데카드를 인수하려는 등 금융사업을 키우려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대기업 집단의 금산결합 구조는 금융기관의 재벌 사금고화로 금융업의 공익성이 저해되고 계열 금융회사의 자금을 계열 확장에 사용하면 경제력집중이 심화되는 등 부작용이 지적된다. 재계 관계자는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해 정책적으로 지주전환을 유도했다면 다른 비지주집단도 지주 전환에 가세하도록 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라며 “롯데 금융계열사 처리 문제도 지주 전환으로 손해 보는 선례가 되지 않도록 금융당국이 과징금 선처 등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