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우찬 기자] 정부가 벤처기업확인제도를 공공에서 민간 중심으로 손질하는 것은 벤처의 양적성장에서 벗어나 질적성장으로 나아가겠다는 방향 전환으로 풀이된다. 벤처기업의 양적성장에만 치우쳐 벤처 선진화는 요원해졌다는 업계의 오랜 비판을 받아들인 것으로, 벤처기업 숫자 늘리기를 포기하는 대신 소수의 국가대표 벤처기업 키우기에 집중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변화다.
벤처업계는 그동안 양적팽창을 거듭해왔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벤처기업확인을 받은 벤처기업수는 3만6820개로 집계됐다. 벤처기업법에 따라 정부가 소득세·법인세·취득세·재산세·등록면허세 등을 감면받을 수 있도록 세제혜택을 주는 덕분에 벤처기업 인증을 받으려는 기업은 해가 갈수록 늘었다. 2018년 벤처기업정밀실태조사(2017년 기준)에서도 벤처기업들은 벤처기업확인제도의 효과성에 대해 '세제 혜택'을 66.2%로 가장 많이 꼽았다.
송치승 원광대 경영학부 교수의 '벤처자금 생태계 현황과 발전방향' 자료에 따르면 국내는 벤처기업법상 다양한 기준을 적용받아 벤처기업수가 양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벤처기업법에 따른 벤처기업은 벤처투자기업, 연구개발기업, 기술평가보증·기술평가대출 등으로 다양하게 정의되는데, 1998년 2042개였던 벤처기업은 2006년 1만2218개, 2010년 2만4645개로 늘었고, 2015년 3만개를 돌파하는 등 양적 폭발을 거듭했다. 반면 미국의 경우 벤처기업의 정의는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받은 기업으로 2015년 기준 4380개로 파악됐다.
벤처기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현행 벤처기업확인제도에서는 기술평가보증 위주로 벤처기업인증이 남발된 한계가 분명했다. 벤처기업 양적 팽창은 정부출연기관인 기술보증기금을 내세워 벤처기업수 증가를 정부의 성과로 포장하기 쉬웠다. 반면 양적 성장이 과연 제대로 된 벤처생태계의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느냐는 비판에선 자유롭지 못했다. 벤처의 본질을 고려한 벤처캐피탈 투자를 받은 벤처투자 유형의 벤처기업수 비중이 4% 안팎에 머물러 있는 것도 이같은 벤처인증 남발과 무관치 않다.
현행 벤처확인제도의 한계는 기술보증기금이 공공 금융기관으로서 리스크 관리에 어느 정도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벤처업계는 당장의 재무 여건은 좋지 않더라도 혁신기술을 보유해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에 대한 벤처인증을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벤처기업 인증의 90%가량이 보증·대출로 이뤄지는데 보증·대출은 금융 쪽 시각"이라며 "혁신성이나 성장성 있는 기업들이 벤처기업 인증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벤처 업계 전반의 혁신 동력이 사라진 대표적 이유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민간중심의 벤처확인제도 개편은 벤처의 양적성장을 일정 부분 포기할 수 있다는 메시지와 닿아 있어 주목된다. 개편안은 벤처의 혁신성과 성장성을 기준으로 벤처기업 육성을 하겠다는 전략인데, 이는 선택과 집중의 방식이다. 유니콘 기업으로 키울 수 있는 소수의 역량 있는 벤처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민간 주도로의 변화는 벤처기업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포기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며 "역대 정부들이 벤처기업수 역대 최다를 자랑으로 내세웠는데, 그 이면에는 벤처 속성이 아닌 기업들이 편입되는 문제점들이 있었다. 이제라도 벤처기업수 늘리기에 급급하지 말고 국가대표급 벤처기업 육성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연세대에서 열린 2018 스타트업 채용박람회. 사진=뉴시스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