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여성의 자기결정권, 태아의 생명 만큼 중요"

"낙태죄 폐지 사회적 합의 형성…충돌하는 두 권리 중 하나에 일방적 우위 부여 안돼"

입력 : 2019-04-11 오후 7:18:15
[뉴스토마토 최영지 기자] 낙태한 여성과 이를 시술한 의사를 처벌하는 낙태법이 제정된 지 66년 만에 해당 법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결정이 나왔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는 그간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가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11일 헌재 전원재판부는 헌재 대심판정에서 낙태죄를 금지한 형법 제269조 제1항 등 위헌소원심판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재판관 9명 중 4명이 헌법불합치 4명, 3명이 단순 위헌, 2명이 합헌 의견을 냈다. 지난 2012년 합헌 결정이 있은 지 7년만이다. 
 
“임신 전 기간 낙태금지 안돼” 
 
예외를 제외한 낙태를 금지하는 자기낙태죄 조항에 대해 유남석, 서기석, 이선애, 이영진 재판관은 “자기낙태죄 조항은 태아의 발달단계 및 독자적 생존능력과 무관하게 임신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적, 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위반할 경우 형벌을 부과함으로써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 출산을 강제하고 있으므로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다” 고 판단했다. 또 “자기낙태죄 조항이 달성하고자 하는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은 중요하다”면서도 “이에 대해서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함으로써 법익균형성의 원칙과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임신한 여성을 낙태하게 한 의사를 처벌하는 의사낙태죄 조항도 같은 이유에서 위헌으로 판단됐다. 
 
단순위헌 의견을 낸 이석태, 이은애, 김기영 재판관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점에 대해 헌법불합치의견과 견해를 같이 한다”면서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의 임신한 여성에 대한 자기결정권 제한이 이뤄질 수 있다. 임신 22주 이후의 낙태는 원칙적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사문화된 조항” 
 
재판부는 “낙태죄와 관련한 수사 현실 역시 자기낙태죄 조항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며 “2010년 기준 연간 약 17만건의 낙태가 이뤄지는 것으로 추정되며, 대검찰청에 따르면 2006~2013년 여성이 낙태범죄로 기소된 경우는 연간 10건 이하에 불과했다”며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라고 꼬집었다. 전날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남녀 5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도 이와 비슷했다. 설문대상 중 58.3%가 ‘낙태죄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응답했고, 30.4%가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응답했다. 2년 전 같은 주제로 설문 조사했을 때 낙태죄 폐지 찬성의견이 51.9%였던 것과 비교했을 때 ‘낙태죄 폐지’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합헌으로 판단한 재판관들은 "사실상 (낙태죄 조항이) 사문화됐더라도 법 조항에 의해 단 하나의 태아를 구할 수 있다면 자기낙태죄 조항의 존재의의는 충분하다"고 반박했다. 
 
"태아 보호는 모성 포함"
 
헌법불합치를 주장하는 재판관들은 “국가가 낙태를 전면 금지할 경우 태아의 생명권은 보호되는 반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완전히 박탈된다. 반대로 국가가 낙태를 허용할 경우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보호되는 반면 태아의 생명권은 완전히 박탈된다”며 “태아의 생명 보호는 임신한 여성의 신체적, 사회적 보호를 포함할 때 실질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합헌 의견을 낸 조용호·이종석 재판관은 “낙태는 생명에 대한 고의적인 파괴행위이므로 국가의 생명보호의무는 임신한 여성의 태아에 대한 침해에 대해서도 적용해야 한다”며 “이에 대한 형사처벌은 입법자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수단 중 하나며, 성교육 내지 피임 교육강화 및 낙태관련상담 실시 등은 낙태를 방지할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에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에 환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영지 기자 yj113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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