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영지 기자] 법무법인 '제민' 대표 노희범 변호사는 18년 가까이 헌법연구관으로 근무한 헌법전문가다. 기간도 오래 됐지만 대통령 탄핵사건과 위헌법률정당 해산심판 실무를 모두 경험한, 세계적으로도 몇 안 되는 헌법전문가다.
그런 노 변호사가 헌법재판소를 떠났을 때, 주위에서는 걱정의 소리가 많았다. 법률가 인생 대부분을 헌법연구만 한 사람이 살벌한 변호사업계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다. 그러나 기우였다. 민·형사 사건은 물론 조세·행정사건을 여러 건 맡아 의뢰인이 만족할만 한 성과를 많이 거뒀다. 최근에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30년간 고수해 온 가동연한 연령을 변경하는 판결을 이끌어내 주목을 받고 있다. 노 변호사는 "헌법정신에 맞게 재판에 임한다는 각오가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헌법전문가에서 변호사로 성공적인 변신을 한 노 변호사를 만났다(편집자주).
7일 서울 서초구 소재 법무법인 제민 회의실에서 만난 노희범 변호사. 사진/최영지기자
지난달 31일 대법원이 가동연한을 60세에서 65세로 상향 판단하면서 30년 만에 판례가 바뀌었다. 이 판결을 이끌어 낸 노희범 변호사(법무법인 제민 대표·사법연수원 27기)는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출신으로, 3년 여 동안 이 사건에 매달렸고, 결국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법률가로서 그의 철학은 재판에 헌법적 가치를 투영하는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국민의 기본권을 민주주의 시스템에 따라 온전히 보장할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안전관리 형편 없는데, 부모 과실이라니"
'가동연한 사건'을 맡은 노 변호사가 원고인 박모(사망 당시 4세)군을 대리한 것은 우연이자 운명이었다. 그는 “3년 전 처남의 지인으로부터 ‘동생 아들이 수영장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며 전화가 왔고, 한걸음에 달려가 피해자 대리인으로 경찰 입회 하에 조사를 받게 했다”며 “수영장 측 안전관리 감독이 너무 형편없었음에도 부모에게 과실이 상당하다는 조사결과를 납득하기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박군은 당시 아침 일찍 수영장에 도착했지만 수영장 내부에는 안전요원이 1명뿐이었다. 그는 "여름 한철 돈벌이로 이용될뿐었지 안전 관리가 전혀 되고 있지 않았고, 이를 방치한 인천광역시 등은 계속해서 책임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도의적인 차원에서라도 사과 한 마디가 없었다”며 “이 사고는 세월호 사고가 있고 얼마 안돼서 있었는데 세월호 사건과 다를 바가 없다. 이대로 선례로 남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해 소송을 진행했다”고도 밝혔다. 박군이 사망한 후 안전요원만 혼자 기소돼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안전요원만 혼자 기소…집행유예"
노 변호사는 1억원 상당의 위자료 소송을 진행했고 1심이 패소 판단하자, 항소심에서부터 가동연한으로 65세를 주장했다. 그는 “어린이의 경우 20세가 될 시기까지 생계비가 공제될뿐만 아니라, 살아있다고 가정했을 때 30-40년이 지난 후에는 기대수명이 더 늘어날 것이므로 가동연한이 65세로 판단되더라도 여전히 불리하다”며 “30년 전 대법원 전원합의체 기준으로 손해를 배상 받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고, 앞으로 파기환송심과 또 대법원에 갈 수 있지만 끝까지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단순히 도시일용노동자의 가동연한이 5년 늘어나서 손해배상의 기준이 됐다기보다 정년 연장에 대한 논의에 발화했다고 생각한다”며 “지금까지 기업이나 정부가 복합적인 이해관계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을 논의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됐고, 사회적 합의를 거쳐 우리나라 국민들의 전반적인 직업군에 정년 연장이 도입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소회를 드러냈다. 또 "노인, 노령자연금 등 단어도 이제 고령자, 고령자연금 등으로 바꿔야 한다"면서도 "가동연한이 늘어났다고 정년 연장이 법정화될 수는 없고, 복지정책이나 고용구조, 연금수급시기를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법연수원 수료 직후 헌재로
노 변호사는 1998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바로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연구관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법원과 검찰도 사회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헌법 재판이 국가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고 18년 가까이 헌법재판소에 있었다”며 “근무 당시 헌재가 만들어져 입지를 이루고 판례를 다질 때였고, 헌정국가로서의 법률이 헌법에 부합되는지, 이념 등이 실현되고 있는지를 검토, 연구했다”고 설명했다.
헌법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의 통치조직과 통치작용의 기본원리 및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 규범이다. 헌재는 최근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위해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는 결정을 내렸고, 낙태죄 위헌 심리를 진행 중이다. 노 변호사는 이에 대해 “낙태, 총기판매, 동성애 등이 국민들에게 적용되는 헌법과 관련된 이슈”라며 “이뿐 아니라 대통령 탄핵과 정당해산을 통해서도 헌법이 장식장 안에 보관되고 있는게 아니고 국민들에게 생활규범으로 보여진 교육이었고, 대한민국이 헌법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입헌민주주의 국가였다는 걸 다시 한번 새롭게 느꼈다”고 말했다.
"대법·헌재, 상호 보완 관계 추구해야"
노 변호사는 '사법농단 의혹' 사건으로 국민 눈에 대법원과 헌재가 대립관계로 비쳐지는 것을 우려했다. 그는 “대법원은 일반 재판에 대한 최고법원이고, 헌재는 법률의 위헌,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등을 하는 기관으로 법률의 해석 등에 관해 다툼이 있을 수 있으나 서로 견제할 게 아니고, 국민 기본권 보장을 최후 보루로 두고 역할이 분담돼 있을 뿐”이라며 “이 둘이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 헌법의 제정취지며, 파견 근무 등을 통해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대법원의 헌재 압박 정황에 대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각자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권한에 따라 독립해 재판권을 행사해야 하고, 각자의 판결에 대해서 서로 존중해야 한다”면서도 “상호독립적인 관계에서 타기관에 있던 재판 정보를 가져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권력 견제 대상은 사법부가 아닌 행정부와 입법부”라고 지적했다.
"모든 입법은 헌법 실현 수단"
노 변호사는 헌재에서의 경험이 그가 변호사로 새출발 하는데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사건 실무에 대해 상대적으로 많은 경험이 없었지만 모든 입법이 헌법의 이념을 실현하는 것이고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사안의 본질적인 부분을 헌법에 투영해 주장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노 변호사는 변호사법 1조를 항상 기억하려 한다. 변호사법 1조는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는 변호사의 사명을 정의하고 있다. 그는 “모든 직업에 대한 법률 중 사명을 1조에 넣는 경우는 드물다. 변호사를 하려면 단지 돈을 많이 번다는 생각으로는 버틸 수 없다”며 “법률적 도움이 필요하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공익 대변자로서의 역할을 함으로써 보람을 갖고 살아가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영지 기자 yj113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