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명연 기자] 정부가 한·영 자유무역협정(FTA)의 원칙적 타결을 선언한 데 대해 전문가들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따른 교역 불확실성을 선제적으로 해소한 조치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유럽연합(EU)의 자유무역 기조에 힘을 실었던 영국의 EU 탈퇴를 기점으로 유럽대륙발 보호무역주의 확대 우려가 제기되는 만큼 교역국 다변화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10일 한국과 영국이 한·영 FTA 협상에 원칙적으로 합의함에 따라 오는 10월 말로 예상되는 브렉시트에 대비할 수 있게 됐다. 한·영 FTA 없이 브렉시트가 완료되면 한국은 자동차 10%, 자동차부품 3.8~4.5% 관세를 내야 했지만 이번 협상으로 한·영이 한·EU FTA 수준을 따르기로 하면서 양국 통상관계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확보한 것이다.
영국 시민들이 유럽연합(EU)을 떠나는 브렉시트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AP·뉴시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영국과 FTA 협상 없이 노딜 브렉시트가 진행되면 한·EU FTA 이전의 관세율을 적용할 수도 있는데, 이번 합의로 기존 무역에 차질이 없게 됐다"며 "기업 입장에서 정책 불확실성을 줄이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성한경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영국은 상품보다 서비스 시장이 발달했기 때문에 한·EU FTA를 준용하면 우리는 실보다 득이 많다"며 "향후 브렉시트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겠지만 다른 국가에 비해 적극적으로 브렉시트에 대응하고 있다는 신호를 줬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브렉시트 이후 영국과 EU 간 무역 위축을 계기로 전 세계의 보호무역 기조가 확대될 가능성이 남아있다. 여기에 미중 갈등이 더해지면 기존 교역국 외의 국가로 우회 물량이 늘어나 각국이 연쇄적으로 보호무역 조치를 강화할 여지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위기 역시 국제 무역질서 내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미국은 다자무역주의를 상징하는 WTO를 약화시키기 위해 통상분쟁 2심을 맡고 있는 상소기구의 상소위원 임명을 반대하고 있다. 상소심은 상소위원 3명으로 구성되는데, 오는 12월 2명의 임기가 완료되면 분쟁해결 절차가 전면 중단된다.
허윤 교수는 "WTO는 보호무역주의를 낮추는 다자간 무역협정의 역할을 했는데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지역주의에 초점을 두고 있다"며 "상소위원 임기가 만료되면 통상분쟁의 최종판결이 작동할 수 없어 WTO 체제가 무력화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새로운 무역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미중 통상분쟁 등 불확실성이 계속되면 개별 국가들의 자국 보호 조치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EU의 경우 보호무역을 선호하는 극우세력이 힘을 얻으면서 한·EU FTA에 추가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성한경 교수는 "영국의 분리주의자들은 이민자를 반대하지만 자유무역은 선호하는 세력으로 오히려 브렉시트 이후 EU보다 적극적으로 FTA를 맺을 수도 있다"며 "반면 프랑스나 독일 등은 상대적으로 한·EU FTA에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EU에서 영국이 빠지면 한국과 EU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영국에 비해 EU의 교역량이 훨씬 많기 때문에 한국 입장에서는 부정적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브렉시트를 비롯한 글로벌 무역환경 급변에 대응하기 위해 교역국 다변화를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성한경 교수는 "정부도 미중 교역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인식을 갖고 유라시아와 신남방 등 새로운 시장을 넓히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며 "영국과 EU는 기존의 시장규모를 지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세종=강명연 기자 unsai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