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세기의 담판'으로 불린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지도 12일이면 꼭 1년이다. 회담 이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또 하나의 분기점'이라는 평가가 나왔지만, 시간이 지나 북미 비핵화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그 의미가 다소 퇴색된 상태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10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개최 1주년을 앞두고 북미 간 협상상황 묻는 질문에 "어느 행정부에서도 북한 문제는 가장 어려운 국가 안보 문제였다"며 "역사적으로 돌아봤을 때 어떤 성공적인 협상이나 결과에도 기복이 있었다"고 답했다. 현재 북한과의 비핵화 대화가 순탄하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6월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내 카펠라호텔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열고 공동성명에도 서명했다. 공동성명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미군 유해 수습·송환 등 4개 항으로 구성됐다. 그간 미국이 강조해온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는 합의문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양 정상이 최소한의 비핵화 수준을 합의해놓고 각론은 향후 충분히 논의하는 수준으로 봉합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도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여기(합의문)를 보면 핵은 폐기될 것이라고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다"며 "많은 사람들을 투입해 (북한 핵을) 검증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70년간 적대국이었던 북한과 미국 정상이 만난 것 자체만으로 세기적 이벤트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회담 다음날인 13일 싱가포르 최대 일간지 스트레이트타임스가 내건 신문 머릿기사 제목 '평화를 위한 긴 여정의 첫걸음'(First step on long road to peace)은 가장 적절한 표현으로 평가받는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문제와 종전선언을 연결하는 타협이 이뤄진다면 7월27일 정전협정 기념일에 맞춰 남북미 3자가 판문점에서 종전선언을 하는 정치적 이벤트를 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그해 9월 문 대통령이 평양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평양공동선언에 합의하면서 기대는 더욱 높아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 북미 양측은 후속협상에 나섰지만 의견조율이 쉽지 않았다. 북한이 비핵화와 상응조치의 단계적·동시적 이행을 주장한 반면 미국은 '비핵화 조치 없이는 제재 완화는 힘들다'는 입장을 한동안 고수했다. 북미 양국은 실무진 선에서의 의견조율을 거쳐 정상 간 '빅딜'을 통한 해법 마련에 나섰지만 올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예상과 달리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면서 평화체제 구축에 다소 제동이 걸린 상태다.
향후 전망도 미지수다.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올해 연말을 북미대화 시한으로 잡고는 미국에게 '새로운 계산법' 제시를 요구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북한의 지난달 4·9일 단거리 미사일 발사로 대표되는 무력시위가 이뤄졌다.
이에 대한 미국의 반응도 만만치 않다. 북한산 석탄을 불법 운송한 혐의로 북한 화물선 '와이즈 어니스트'호를 압류했으며,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이 발사한 단거리 미사일을 탄도미사일로 규정하며 유엔 결의 위반이라는 주장도 내놨다.
다만 북미 양국은 서로에 대한 극단적인 언사는 피하는 등 여전히 협상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와 일부 언론의 북한 고위관료 숙청설에 대해 "어쨌든 상관 없다" "보도가 맞는지 모르겠다"며 김 위원장과의 대화 의지를 계속 드러내고 있다. 북한 입장에서도 김 위원장이 주민들에게 언급한 경제번영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우리 정부의 중재노력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북유럽 3개국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대화의 모멘텀이 유지되고 있고 남북·북미 간 대화를 계속하기 위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며 "조만간 남북 간에, 북미 간에 대화가 재개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달 말 트럼프 대통령 방한 전 '원포인트' 남북 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6월12일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싱가포르 카펠라호텔에서 오찬을 함께한 후 산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