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우찬 기자] 국내 신규 암호화폐 거래소 오픈이 사실상 사라졌다. ICO(암호화폐공개·Initial Coin Offering) 수요가 쪼그라들면서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정리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를 집계하는 기관, 자료 등이 없는 가운데 전체 규모는 200여개 안팎으로 추산된다. 업비트·빗썸·코빗·코인원 등 이른바 4대 거래소를 포함해 20~30개 정도의 거래소만이 유의미한 거래량을 기록하며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신규 거래소가 시장에 진입하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 개수가 급격히 늘어났던 시기는 지난해 상반기까지다. 2017년~2018년 상반기 이른바 ICO 열풍 당시 블록체인 컨설팅 업체에는 신규 거래소 오픈과 관련한 문의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업계 관계자는 "1억~2억원가량 하는 거래소 오픈 솔루션만 활용하면 KYC(고객확인) 절차, BM(비즈니스 모델) 구축 등 거래소 오픈 관련 제반 준비를 갖출 수 있어 진입도 무난했다"며 "ICO 거품이 꺼지면서 이 비용은 4000만원 아래까지 내려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신규 거래소 오픈은 거의 없어진 상황이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의 신규 오픈이 자취를 감춘 건 ICO 수요가 급감한 것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ICO는 프로젝트 백서 공개를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퍼블릭한 수단으로 각광받았지만 스캠, 투자사기 등으로 부작용이 부각되면서 업계 수요가 사라졌다. 프로젝트 상장을 위해 거래소가 중간 다리를 놓아주며 거래 수수료 등의 이득을 챙기는데, 비트코인 등 글로벌 시세가 한창 우상향 그래프일 때는 웬만한 프로젝트 상장으로도 거래가 활발해 거래소에 돈이 되는 구조였다. 업계 한 관계자는 "ICO 열풍 당시 중소 거래소들이 프로젝트 상장을 미끼로 우후죽순 생겨난 것도 사실"이라며 "거래소 자체 토큰을 발행하고 문 닫으면 그만인 경우도 많았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ICO 거품이 꺼지면서 거래소에도 위기가 닥쳤다.
현재는 외부 환경도 ICO 열풍 때와 사뭇 달라졌다. 당국은 ICO 금지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프로젝트들의 경우에도 자금조달 수단으로 ICO를 꺼리고 있다. 법무부가 지난 1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암호화폐 관련 사기·다단계 등 수사로 420명이 기소(구속 132명) 됐으며, 피해액은 2조6985억원에 이르는데, 거래소 관련 범죄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ICO를 통한 자금조달이 한때 수백억원까지 가능했다면 현재는 유망 프로젝트조차 10억~20억원 모금하기가 어렵다.
ICO 수요는 해외에서도 줄어드는 추세다. ICO 전문 평가업체 ICO벤치(ICO Bench)에 따르면 올해 1분기 ICO를 통해 조달한 모금액은 약 1조663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 약 7조6976억원보다 86% 쪼그라든 것으로 나타났다. 프로젝트 또한 581개에서 328개로 줄어들었으며, ICO 모금 성공률은 52%에서 33%로 떨어졌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규제 권고안도 거래소 환경 변화의 중요 요인이다. FATF 권고안과 국회 계류 중인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안에 따르면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영업을 위해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해야 한다. FATF 규제 권고안에는 거래소 관련 법적 제재를 법인뿐만 아니라 업체의 이사 등 고위 경영진에게도 묻는 내용도 포함돼 있는데, 이는 신규 거래소 오픈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조항이다.
거래소 신규 오픈은 기존 강자들과의 차이가 너무 크게 벌어져 있어 향후에도 늘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내 거래소 한 관계자는 "기존에는 거래소들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그렇게 크지 않아서 새로 시작해도 충분히 경쟁할만했지만 지금은 너무 커져서 신규 거래소가 늘어나기 힘들 것"이라며 "기존 자리 잡은 상위 거래소들의 볼륨이 커져 차이를 줄이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