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문식 기자]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우대국 명단)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한 뒤 첫 주말 서울 시내는 촛불로 뒤덮였다.
3일 서울 종로에 있는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민주노총과 한국진보연대, 한국YMCA, 흥사단 등 68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시민들과 함께 소녀상을 둘러싸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정부의 경제제재 조치를 한 목소리로 규탄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동참한다는 의미의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문구가 적힌 옷을 입은 시민들도 보였다.
발언에 나선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은 “일본은 전쟁범죄를 인정해야 한다”며 “일본이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이런 행동을 전 세계에 알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을 반성하게 하는 일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했다. 이어 “우리 국민을 겁박하는 부당한 지금의 행태(경제조치)에 대해 여러분과 함께 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일본 시민활동가들의 연대 메시지가 서면으로 공개됐다. 일제 강제 동원 문제에 대한 해결을 위해 목소리를 내온 일본 시민단체 ‘강제 동원 문제 해결과 과거 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은 아베 정권에 대해 “한국 강제 동원 관련 대법원 판결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과거를 무시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아베는 본인이 추궁당하고 있는 문제에서 자유롭기 위해 무역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라며 “한일 시민은 연대로 강제징용 피해자의 권리 회복을 위해 함께 싸우자”고 외쳤다.
시민단체들은 일본에 대한 다양한 비판 메시지를 꺼냈다. 시민행동은 “우리는 일본에 의해 강제 동원돼 부당하게 노동착취를 당했던 조선인들을 기억한다”면서 “100년 전 가해자였던 일본이 다시 한국을 대상으로 명백한 경제 침략을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결정에 대해 “침략과 식민 지배의 역사를 반성하기는커녕 동아시아 평화 체제의 시대적 추세에 역행해 군사 대국화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결정을 철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참해 달라고 시민들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문화제에 참가한 일부 시민들은 불매운동에 동참한다는 메시지가 담긴 티셔츠를 맞춰 입고 모여 눈길을 끌었다. 행사에서 참가자들은 아베 정권을 규탄하는 ‘토착 왜구 몰아내자’, ‘조선일보 폐간하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었다. 또 ‘국민의 힘으로 새역사를 쓰자’, ‘촛불의 힘으로 반드시 이기자’, ‘가자 일본대사관으로’, ‘침략 지배 사죄하라’, ‘독립운동은 못 했지만 불매운동은 해야 한다’와 같이 일본이 침략의 역사를 사죄해야 한다는 내용 등을 담은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이날 약 1시간30분 동안 촛불문화제를 하고 오후 8시30분쯤부터 행진을 시작했다.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은 문화제 장소 인근에 위치한 일본대사관 입주 건물 앞 대로변으로 이동해 일본대사관 건물을 향해 구호를 외치고 함성을 질렀다. 이들은 아베 정부를 규탄하는 메시지가 적힌 현수막을 펼치기도 했다. 이후 행진은 조계사와 종각역, 세종대로를 거쳐 조선일보 사옥 등까지 이어졌다.
이들은 지난달 20일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촛불 집회를 열고 경제 보복에 나선 아베 정권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날 오후 2시쯤에는 흥사단이 주한일본대사관이 입주한 건물 앞에서 아베 정권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들은 “한일 관계를 극단으로 내모는 무모한 조치를 감행했다. 이는 한국에 대한 전면전 선전포고”라고 질타했다. 흥사단은 일본의 조치에 대해 “한일 관계에서 나아가 세계 질서와 평화를 깨뜨리는 위험한 행위”라며 세계 시민의 연대를 요청했다.
시민행동은 앞으로도 이런 문화제를 이어갈 계획이다. 오는 10일 오후 7시에는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아베 규탄 촛불문화제’를 개최하고 15일 광복절에는 광화문광장에서 대규모 촛불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 다음 날인 지난 3일 오후 아베규탄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아베 규탄 3차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에서 조선일보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문식 기자 journalma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