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풍경)DDP 폴 스미스 전시회…작품이 아닌 인생을 담은 폴

입력 : 2019-08-13 오후 4:40:34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가로 세로 3미터의 창문도 없는 방.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 폴 스미스의 첫 매장이었습니다.
 
1970년 노팅엄 뒷골목의 이 단칸방에서 그는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키우는 반려견 '호머'를 매장 매니저 역할로 세우고, 이틀만 문을 열었습니다. 나머지 요일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전시는 입구의 이 공간을 시작으로 그가 꿈꾼 세계가 펼쳐집니다. 프로 사이클 선수가 되려다 17세에 사고를 겪고 꿈을 접은 소년이, 아내 폴린 데니어로부터 전반적인 옷 제작 과정을 배우던 청년이 있습니다. 중후반부에는 데이비드 보위와 뱅크시, 온갖 전위적인 예술가들과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거장의 모습도 등장합니다. 
 
단순히 자신의 작품을 걸어두는 여느 디자이너들과 달리, 그는 자신의 삶을 군데 군데 걸어뒀습니다.
 
폴 스미스. 사진/뉴스토마토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의 삶을 다룬 전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달부터 동대문 DDP 개관 5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전시는 그의 패션 브랜드가 탄생한 시점부터 현재까지의 흐름을 한 눈에 보여줍니다. 직접 소유한 1500개가 넘는 오브제를 활용해 그가 얼마나 호기심과 에너지가 넘쳤던 인물인지, 또 얼마나 재치와 위트가 넘쳤던 인물인지를 보여줍니다. 
 
3제곱미터 규모의 첫 매장을 지나면 파리 호텔 객실을 재현한 공간이 나타납니다. 검정 펠트 천을 덮은 침대 위에는 셔츠 6벌, 점퍼 2벌, 슈트 2벌이 펼쳐져 있습니다. 생전 처음 연 그의 첫 쇼룸인데, 마지막날 방문한 단 한 명의 손님이 그의 첫 주문 고객이 됐다고 합니다.
 
이 쇼룸 옆에는 자신에게 의류 디자인의 지식을 달려준 아내 폴린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폴린은 그에게 품질과, 재단, 비율의 중요성을 알려줬고 그가 자신 만의 브랜드를 론칭할 수 있도록 응원했습니다. 당시 폴린에게 배우던 그림들과 의류 원단들이 그 사진 밑에 가지런히 배열돼 있습니다.
 
폴 스미스의 룸을 옮겨 놓은 모형 작품. 사진/뉴스토마토
 
패션 세계로 발을 디딘 이야기는 점차 인간 폴스미스에 대한 이야기로 나아갑니다. 미술품과 서적 같은 자신의 소품들을 매장 인테리어로 썼다는 일화부터 분홍색 다이슨 진공청소기까지 팔았다는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런던 코벤트 가든에 있던 그의 첫 사무실은 시대를 넘나드는 전위와 파격으로 가득합니다. 직접 프린팅한 파스타 문양의 셔츠와 심각한 분위기를 풀기 위한 장난감들, 사무실 가득 쌓여 있는 이런 흥미로운 물건들에서 그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전시는 비단 패션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그가 평소 좋아하던 삶의 오브제들이 벽면 곳곳에 작품처럼 걸려 있습니다. 형형색색의 거대한 직사각형 작품인 '버튼 월'은 가까이서 보면 수천개의 단추로 구성돼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을 보며 오래된 핸드폰이나 도미노로 매장을 꾸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의 다양한 아이디어 영감과 도전정신에 절로 감탄하게 됩니다. 앤디워홀, 데이비드 호크니 등 유명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을 수집해온 수집광으로서의 면모도 드러납니다.
 
뱅크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 선수 등 폴 스미스와 협업한 아티스트와 운동선수들의 사진 콜렉션이 벽면에 걸려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전시 중후반부는 다양한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한 작품들로 꾸며집니다. 스미스는 평소 자신이 평소 좋아하는 것에 심취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협업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들이나 예술가들과 작업하는 것을 즐기곤 했습니다. 
 
무지개처럼 칠해진 자동차 제조사 로버의 미니부터, 주황 띄를 두른 라이카 카메라, 전위의 뮤지션 데이비드 보위의 앨범 발매 기념 티셔츠 제작까지. 다양한 협업으로 성장한 그의 삶이 이야기 됩니다.
 
전시 말미에는 컬러를 중시했던 그의 패션 철학이 펼쳐집니다. 2019 봄여름컬렉션과 작품에 쓴 여러 컬러 실들, 패션쇼를 기획하고 구상하는 장면의 영상들이 보여집니다. 위트있고 재기 넘치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매일 매일은 새로운 시작" 전시관 마지막 걸음에 적힌 그의 문장입니다. 실제 포스트잇에 써두고 매일 이를 가슴에 새긴다는 그의 뜻을 환기시키려 전시장에는 대형 사이즈로 확대해 걸어뒀습니다. 
 
지난달 6일 오픈한 전시는 오는 8월 말까지 DDP 배움터 2층 디자인박물관에서 이어집니다. 런던디자인 뮤지엄과 서울디자인재단이 공동 주최, 지아이씨클라우드가 주관으로 진행됩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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