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광주일고와 한영외고

입력 : 2019-09-05 오전 6:00:00
이강윤 언론인
검사 출신 자유한국당 의원들(주광덕·곽상도)이 조국 후보자 딸의 고교생활기록부와 병원기록까지 공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생활기록부나 진료기록은 수사권 말고는 본인 외에 발급받을 수 없다. 불법적 입수라면 형사처벌이 당연하다. 원수에 대한 증오심으로도 자녀에게 까지 차마 이렇게는 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심야에 찾아가 소란피웠다는 기자들보다 더 무도하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부산에 가서 "문재인정권은 광주일고 정권…서울 구청장 25명중 24명이 민주당인데, 20명이 광주전남전북"이라고 지역감정에 또 불을 질렀다. 정치 내전 유발이다. 이런 선동의 기저에는 뭐가 있을까. 대통령이 구청장을 임명하는 양 가짜뉴스로 시민을 선동하며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정치테러'의 원인은 뭘까. 한국어를 각기 다른 곳에서 배우지 않고서야 어떻게 "꽃 보며 자위(自慰)" 운운하는 정신파탄성 언동을 논평이랍시고 낼 수 있을까.
 
생각을 거듭해봐도 친일 미청산 말고는 그 원인을 찾지 못하겠다. 비뚤어진 주춧돌 위에 벽돌을 쌓아왔기에 아무리 공을 들여도 그 탑은 비뚤어질 수 밖에 없었다. 단죄-청산이 없었으니 염치나 도리, 정의가 길 가의 돌멩이만도 못하다. 민족정기를 바로잡지 못한 후과가 뼈아프다. 친일파-구체제 청산 없이 과연 이 나라에 미래가 있을까. 이대로라면 증오의 무한반복을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지금 20대가 사회 중추가 되는 30년쯤 뒤면 진영대립은 약해질 것"이라는 어느 원로의 진단을 들은 바 있다. 근거는 단순했다. 20대는 진영대립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다. 원로의 진단치고는 논리가 너무 단순해 허탈했지만, 막연하게나마 동의하고 싶었다. 그 단순 논리에라도 기대고 싶을 만큼 암담했다. 그런데 최근의 선전선동을 보면, 그 원로의 희망섞인 예측이 얼마나 순진하고 허약한 것이었는지 바로 드러난다.
 
쟁취가 아니라 어설프게 주어진 해방으로부터 70여년. 두 세대가 지나가고 있건만 불구대천 반목을 유발하는 악의 근원은 엷어지기는 커녕 강화되고 있다. 어떻게 친일잔재를 청산해야 할까. 말이 '잔재'지 실은 거대한 체제로 공고하게 똬리틀고 있다. 그 체제가 온존되는 한 반목은 끝날 수 없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대립과 증오를 떠올리는 건 너무 심한 비약일까. 지금이라도 청소해야 이 광기의 대결이 사그라들지 않을까 싶은데, 문제는 가능성과 비용이다.
 
진영 갈등이 단순한 보수-진보 구분을 넘어 계급간 대립 요소까지 겹쳐있으니, 용도폐기된 '계급혁명론'이라도 재호출해야 하나. 그건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옳은 방법도 아니다. 청소든 혁명이든 어마어마한 저항이 있을 터이니, 더 어마어마한 비용과 희생이 필요하다는 점 역시 단박에 계산이 나온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그 비용과 희생을 치른다 해도, 과연 대청소가 가능할까 라는 근본적 의문이다.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100년간 퇴적된 구조의 해체가 가능할지에 대한 '물리적 의구심' 때문이다.
 
'광복-친일파청산 포기-군사독재 치하 기득권 공고화'로 이어져온 한국당 류의 독소가 너무나 깊고 넓다. 물적 기반 와해 뿐만 아니라, 의식혁명까지 이뤄야 진정한 청소가 완수되는데, 이대로 20년간 계속 집권한다 한들 '선거'로 얼마나 청소될지 의문이다. "최악을 걸러내는 게 선거"라며 최악 뺨치는 차악이 관문을 통과하는 게 선거라는 '순회 극단'의 호객 선전이다. 흔히들 선거를 통한 세력교체를 얘기한다. 요체는 그 세력교체를 '구조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선거는 그네처럼 양 쪽을 오가는 속성이 있다. '20년 집권'이 선거의 '스윙' 속성을 과소평가한 건 아닌지, 주관적 감성이 아닌 객관적 조건으로 따져봐야 한다. 모든 체제는 형성 당시부터 반체제라는 수정란이 배태된다는 것을 로마사 이래 모든 혁명사가 웅변하고 있다. 친일잔재 대청소가 지금이라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은 정녕 불온한 것인가. 아니면 어느 비관주의자의 무기력한 한탄인가.
 
청산되지 못한 친일괴물은 불법과 부정을 자양분으로 커왔다. 정상세포보다 생육이 4배나 왕성한 암세포처럼. 항암제 투여가 촛불정부에게 부여된 시대적 숙제였다. 숙제란 형세에 따라 잠시 미뤄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초심으로 돌아가 정체성 재정돈하고, 시대적 요구를 완수하라!" 이게 현 정부 최대 실세이자 최대 주주인 시민의 명령이다.
 
이강윤 언론인(pen33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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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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