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부산 가면 구두 '불광' 내봐야지

입력 : 2019-03-12 오전 6:00:00
이강윤 칼럼니스트
오래 전 미담 기사에 숟가락 하나 얹으려는 것이 아니다. ‘살만한 세상’은 왜 이렇게 주로 어려운 사람들이 만들어가는지를 새삼 생각하게 돼서다. 부산일보 2015.2.15.일자 <이발사와 구두미화원…23년 이웃사촌의 정, 피보다 진했다> 제하의 기사다.
 
부산 강서구에 대저동이라는 곳이 있다. 토마토로 유명하다. 대저동 강서구청 인근에 작은 상가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그 중에 ‘정원이발관’이 있고, 그 옆엔 한 평짜리 구두미화부스가 있다. 당시(이하 시제는 신문게재일 기준) 예순인 이발소 주인 박경준씨와, 그 보다 열 살 위인 구두미화원 문교술씨의 사연이다.
 
23년 전 어느 날 문씨가 대저동에 나타났다. 누추한 입성에 걸음걸이도 이상했고, 사람들 말도 잘 알아듣지 못했다. 선천성 청각장애와 언어장애를 가진 복합장애였고, 다리는 의족이었다. 부인도 청각장애다. 그런 그가 구두를 닦겠다며 거리를 오갔지만, 사람들은 부랑아 보듯 외면하기 일쑤였단다. 이발 무료봉사를 다니며 수화를 조금 익혔던 이발사 박씨가 보기에 너무 딱해 수화로 말을 건 게 이들 23년 우정의 시작이다. 문씨와 말이 안 통하는 손님이 있으면 이발사가 나서서 ‘통역’을 해줬고, 추운 겨울 문씨가 한데서 떨며 일하는 게 안쓰러워, 건물주 양해를 구해 이발소 옆에 간이부스도 만들어 주었다. 무엇보다 친구가 되어 주었다, 아니 ‘되어준 게’ 아니라 ‘되었’다.
 
미화원 문씨의 집은 부산 범일동이란 곳인데, 대저동까지 30km는 족히 되는 거리를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단다. 그게 너무 위험해보여서 이발사 박씨는 한사코 말렸지만, 끝내 고집을 꺽지 않더란다. 위험한 줄 알지만 오토바이를 탈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을 터. 정부지원금이 나온다지만, 장애인용 자동차가 어디 한 두 푼인가. 박씨는 자기 돈을 헐어 조금 더 큰 오토바이로 바꿔줬다. 오토바이가 조금이라도 크면 조금이라도 덜 위험할 것 같아서. 잘은 모르지만, 이발사가 벌면 얼마나 큰 돈을 벌겠는가.
 
문씨는 억척과 성실로 그 숱한 역경을 이겨냈다. 요즘은 하루 몇 만원 벌이는 하는, 소박하지만 어엿한 가장 노릇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4년 전, 그만 집에 불이 나는 횡액이 닥쳤지만, 가족과 이웃의 합심으로 화마도 극복했다.
 
어느 해 겨울, 이발사 박씨가 문턱 높은 관청을 찾아갔다. 강서구청 민원봉사센터. 문씨의 구두부스가 너무 낡아 비도 들치고 황소바람도 숭숭 통하는 걸 두고 볼 수가 없어서였다. 고맙게도 구청 담당자는 낡은 부스를 흔쾌히 증축해줬다(이런 공무원도 있다!). 새롭게 단장된 구두부스를 보며 문씨는 “힘닿는 대로 저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고 화답했다. 이발사 박씨는 “나도 셋방살이하는 주제에 뭘 크게 도와주었겠느냐. 문씨의 의지가 강했다. 작은 관심이 누군가에겐 큰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배웠다”고 말한다. 좋은 일 하는 사람들 열에 아홉은 대개들 이렇게 말한다.
 
이들의 오순도순 토닥투닥 얘기를 읽다보니 웃음 끝에 코 끝이 찡해진다. 사람 사는 세상이란 이런 거 아니겠는가. 사람 사는 세상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목표다. 노 전 대통령은 수구기득권의 조직적 반발과 보수언론의 묻지마 흔들기로 결국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모두가 꿈 꾸는 세상은 이런 걸 게다. ‘정치’가 못하는 일을 시민들이 오순도순 해내고 있다.
 
재벌들 곳간에 수 백조원의 유보금이 쌓여있다.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줄곧 시행한 고환율정책과 법인세인하의 과실이다. 당시 대통령들이 나서서 그렇게 떠들던 ‘낙수효과’는 없었다. 소득양극화만 극심해졌다. 정부 통계로도 증명됐다. 문재인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으로 정책을 대전환했다. 그간 수 많은 ‘문씨와 박씨들’이 성실히 일해서 낸 세금으로 나라살림이 꾸려져왔다.
 
재벌들에 대한 조세는 공정한지, 편법탈세는 없는지, 경영권 세습과정의 불법은 없는지, 과실 배분은 적정한지 끝까지 따지고 처벌사항있으면 벌줘야 한다. 그게 경제민주화고, 재벌개혁의 첫 걸음이다.
 
혹시 부산 갈 일 있으면 강서구청 옆 박씨 이발소에 가서 머리 자르고, 문씨에게 들러 구두 뒷축 갈고 반짝반짝 ‘불광’도 내봐야겠다.
 
이강윤 칼럼니스트(pen33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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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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