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빈집을 채우는 법

박용준 공동체팀장

입력 : 2019-09-11 오전 6:00:00
어렸을 적 놀러간 친구네 동네는 가파른 언덕에 있었다. 계단도 많고 집도 다닥다닥 붙어있었지만, 3대가 한 방에서 자던 친구는 정작 아무렇지 않아했다. 지금에서야 그 동네를 달동네라 부르지만 그때는 그게 당연한 시절이었고 그렇게 어찌어찌 살았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던 그 동네는 성인이 돼서 찾아갔을 땐 곳곳에 재개발 현수막이 걸렸다. 금방 진행된다던 재개발은 사람들 사이만 찢어놓은 채 한 해 두 해 연기됐고 동네엔 이상한 딱지와 X자 빨간 표시가 곳곳에 가득했다. 
 
그리고 빈집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미 친구네도 새 아파트로 떠난 후였다.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는 이유로 수리도 하지 않으면서 새로 이사오는 사람은 눈에 띄게 줄었다. 골목에 하나 둘 생기던 빈집은 점점 늘어 어느새 세 집 중 하나, 이젠 두 집 중 하나는 빈집이 됐다. 늘어난 빈집은 부랑자, 가출 청소년, 불량배, 쓰레기들이 독차지했다.
 
빈집은 집이 비어 있는 상태로 일정기간 이상 방치된 것을 말한다. 살기 위해 목적으로 만들어진 집이 제 용도를 찾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단기간 비어있을 경우야 별 문제 아니지만 장기간 비어있는 집은 기본적인 관리도 되지 않아 도시 미관을 해치고 마을의 골칫거리가 된다. 죽은 공간의 전염성 또한 무시할 수 없어 빈집이 하나 둘 생기면 그 동네가 죽는 건 순식간이다. 집은 개인 소유지만 빈집 문제는 사회문제다.
 
정작 집 주인은 관심이 없다. 빈집이 다수 존재하는 지역엔 재개발을 노리고 들어온 외지인들이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다. 이들은 언젠가 실현될 개발차익에만 관심있을 뿐 심지어 빈집이라 임대료를 받지 못한다 해도 큰 상관없다. 이런 빈집이 전국에 100만호가 넘는다. 심지어 서울에도 4000호 가까이 된다. 평생 일해도 내 집 하나 갖기 어려운 시대에 빈집이 100만호라니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우리가 쫓아가고 싶어하는 선진국에선 이미 빈집을 통제하는 제도를 다양하게 시행 중이다. 대표적인 방법이 빈집에 세금이나 벌금을 매기는 ‘빈집세’다. 영국은 이미 빈집 방치기간에 따라 빈집에 세금을 물리는 빈집세를 시행 중이다. 캐나다 밴쿠버도 2017년부터 1년 중 6개월(180일) 이상 비어 있는 집에 대해 공시가의 1%를 빈집세로 납부하도록 해 효과를 거뒀다. 프랑스도 2년간 거주기간이 30일 이내인 집에 대해 세금을 부과한다.
 
실제 밴쿠버는 빈집세를 도입한 이후 빈집이 1085건에서 922건으로 15% 줄어들었다. 우리도 집을 주거목적이 아닌 부동산 투기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이들에게 빈집세를 매긴다면 거래가격을 낮추고 거래를 활성화해 새로운 용도로 새 길을 열어줄 수 있다. ‘부동산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진리 아래 한 번 오른 부동산 가격은 내려가지 않는 현실 속에서 빈집세 내지 공실세 도입 정도의 변화는 필요하다.
 
얼마 전 만난 이종건 오롯컴퍼니 대표가 진행하는 옥반지 프로젝트는 반지하와 옥탑방 등 빈집을 빌려 청년들이 DIY로 직접 고쳐서 활용한다. 인천에서 만난 최환 빈집은행 대표는 빈집을 빌려 반지하에서 버섯을 키워 판매한다. 기회와 공간이 필요한 청년들에게 빈집만한 게 없다. 빈집을 매입하거나 정비하는데 많은 예산이 든다는 이유로 뒷짐만 지는 정부와 자자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빈집세가 당장은 어렵다면 이들 같은 청년들에게 빌려라도 달라.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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