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한민국은 집집마다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여러 대씩 보유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이 적지 않고, 유익한 정보와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해로운 내용도 적지 않고, 부작용도 작지 않다. 그렇지만 태양에도 흑점이 있고 아름다운 보름달에도 얼룩이 있듯이 그것은 사소한 것이다.
만약에 그런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나 유익한 정보가 없다면 TV와 컴퓨터는 어떻게 될까? 아마도 쓸모없는 상자 또는 판자와 다름없을 것이다. 이들 문명의 이기에 생동감을 불어넣어주는 것은 결국 이들 콘텐츠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 외국산 콘텐츠 프로그램이 국내 시장을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 동영상 부문에서 유튜브는 이미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이제는 넷플릭스 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국내 침투도 가속화되고 있다. 넷플릭스의 국내 유료 가입자는 186만명으로 1년 사이 4.4배 증가했다. 반면 국내 7개 OTT 가입자는 10.4% 감소했다고 한다.
아직 국내에 진출하지 않은 미국의 디즈니와 애플, 통신사 AT&T의 워너미디어 등도 언젠가는 한국에 상륙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OTT업계는 비상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이에 따라 국내 업계도 나름대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KBS·MBC·SBS 등 지상파 3사와 거대 통신사 SK텔레콤이 통합 OTT '웨이브'를 출범시켰고, CJ ENM과 JTBC도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국내 토종 OTT업계는 앞으로 이들 ‘2강’을 중심으로 재정비될 전망이다. 또 이들과 해외 OTT 사이에 불꽃튀는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들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이들의 경쟁을 통해 더 유익하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선택의 폭도 넓어질 것이다. 취향에 따라 콘텐츠를 선택해서 즐기면 된다.
따라서 이들 국내외 OTT업체들의 경쟁은 콘텐츠에서 판가름날 것이 틀림없다. 재미있고 유익한 콘텐츠를 많이 보유한 업체들이 결국 소비자의 사랑을 받으며 경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에 있어 자동차나 선박, 컴퓨터나 TV 등 하드웨어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하드웨어를 채워줄 콘텐츠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에 들어섰다. 그리고 이미 한류의 확산을 통해 콘텐츠의 중요성과 파급력을 실감하고 있다. 이를테면 K-Pop이라 일컬어지는 한류 가요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 한국의 공산품, 나아가서는 한국이라는 이름을 전세계에 알리는데도 톡톡히 한몫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도 이런 문화콘텐츠가 끊임없이 생산돼야 한다.
그러자 정부도 지난 17일 나름대로 대책을 제시했다. 한류를 비롯한 한국의 콘텐츠산업을 주력 산업으로 키워보겠다고 의욕을 보인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마련한 ‘콘텐츠산업 3대 혁신전략’에 따르면 콘텐츠 제작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2022년까지 1조원 이상의 정책금융을 추가로 공급한다. 5세대 이동통신 시대에 발맞춰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등 실감콘텐츠에 대한 과감하고 선도적인 투자로 초기 시장을 개척한다는 계획이다. 2022년까지 국내 콘텐츠산업 매출액 150조원, 수출액 134억달러를 달성하고 70만명의 고용을 창출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 모든 대책도 ‘좋은 콘텐츠’로 이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아무리 금융지원을 많이 하고 시설 좋은 공연장이나 촬영장을 많이 만들어도 좋은 콘텐츠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또다른 바벨탑 같은 것이다. 아마도 곰팡이만 피어날 것이다.
좋은 콘텐츠를 많이 생산하고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역량있는 인력이 확보돼야 한다. 콘텐츠 자체가 사람이나 다름없다. 콘텐츠의 종류는 영화나 드라마, 음악프로, 스포츠경기, 다큐멘터리, 지식프로 등 다양하다. 그렇지만 어떠한 종류이든 결국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다.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우수한 작가와 감독, 배우가 없으면 안된다. 다큐멘터리와 지식프로는 실력있는 연구자 혹은 탐구자들이 있어야 만들어질 수 있다. 음악프로도 탁월한 연주자와 지휘자가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내는 것 아닌가?
결국 콘텐츠 산업 발전의 기본조건은 역량있는 인력을 양성하고 배출하는 것이다. 깊은 전문지식이나 남다른 창의성과 상상력을 갖춘 인재들이 많을수록 좋다. 그런데 이번에 제시된 정부대책에는 그런 고민이 부족해 보인다. 물론 인력양성이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다. 그럴수록 더욱 치열한 고민을 통해 콘텐츠 인력을 키워내야 한다. 콘텐츠 산업에서는 인재가 알파요 오메가이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