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태의 경제편편)한국 금융의 ‘나쁜 혼’

입력 : 2019-08-28 오전 6:00:00
한국 금융사들의 민낯이 또다시 드러났다.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DLS) 투자자들을 울린 것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21일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 상품의 판매규모는 총 8224억원에 이른다. 우리은행(4012억원)과 하나은행(3876억원)이 가장 열심히 팔았다. 이밖에 국민은행과 유안타증권, 미래에셋대우증권, NH증권 등도 취급했다.
 
특히 투자자들 가운데 89%가 개인투자자들이다. 개인투자자 중 절반 가까이는 65세 이상 고령자들이다. 투자자들은 아마도 오랜 동안 부지런히 일해서 모아둔 여유자금을 맡겼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와 같은 금리수준에서도 손실률이 90%를 넘어설 것으로 금감원은 추정했다. 그야말로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개인투자자들과 금융사 사이의 분쟁은 이미 시작됐다. 금융감독원을 찾아가 분쟁을 해결해 달라고 신청한 건수가 지난 16일 현재 29건에 달했다고 한다.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일부자는 시민단체와 함께 관련 금융사를 고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2일 “불완전판매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우리은행을 비롯해 문제의 상품을 판매하고 운용한 금융회사에 대해 합동검사에 나설 계획이다. 
 
문제의 금리연계형 상품은 한때 제법 인기를 끌다가 지난해 말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국과 영국, 독일의 금리가 하락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해당 상품의 수익률이 올 들어 원금손실 구간에 진입했다. 그러면 금융사들은 상품 판매를 중지했어야 했지만, 계속 판매했다. 그 결과 이번 같은 또 하나의 ‘금융참사’를 야기한 것이다.    
 
문제의 금융상품은 그 구조 자체가 해괴해 보인다. 상황이 좋을 때에도 수익률은 고작 4% 수준이지만, 나빠지면 원금을 모두 잃어버릴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수료는 금융사가 선취한다고 한다. 금융사들은 수수료를 먼저 챙긴 후에는 손실이 발생하든 말든 아예 관심을 끊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투자자의 이익과 손실부담이 현저하게 균형을 상실한 것이라고 하겠다. 상품 자체에 ‘사기적 요소’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일반 투자자들은 이렇게 해괴한 복잡한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에 선뜻 나서기 어렵다. 금융사의 적극적인 권유가 있어야 솔깃해서 투자하는 경우가 아마도 대부분일 것이다. 특히 고령자는 더욱 조심한다. 따라서 금융당국은 금융사들이 어떻게 투자를 유도했고, 투자에 따른 위험성을 제대로 알렸는지 철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  
 
파생금융상품은 흔히 ‘대량살상무기’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금융사들이 파생상품을 제대로 설계하고 운용할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간혹 있다. 상품의 핵심구조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판매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뛰려고 하는 것처럼 조마조마하다.  
 
이번 사태는 11년 전 벌어진 키코 사태를 연상시킨다. 당시 환율 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해 키코에 가입했던 기업들이 예상치 못한 환율 폭등으로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동안 15개 중소조선사의 키코 손실액만 6조6000여억원에 달한다는 조사결과도 최근 제시됐다. 1년 매출액의 3분의1을 차지하는 규모이다. 
 
그런데도 당시 문제의 상품을 판매한 금융사들이 상응하는 책임을 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금융사들은 이리저리 책임을 회피했다. 법정에서도 진실은 묻히고 말만 무성했다. 금감원이 최근 사건을 재조사하겠다고 했지만, 가시적 성과는 아직 없다. 
 
그러니 한국 금융계에 기강이 바로설 리가 없다. 이번에 금융사들이 겁도 없이 금리연동 파생상품을 취급한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인 플라톤이 대작 <법률> 제10권에서 사용한 어법을 원용하자면, ‘나쁜 혼’이 한국 금융사들을 조종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금융당국이 보다 분명하게 처리해야겠다. 철저한 조사를 거쳐 ‘금융기강’을 바로세워야 한다. ‘나쁜 혼’이 떠돈다면 그것도 몰아내야 한다. 필요한 경우 금융사 경영진에 대한 서릿발 같은 책임추궁도 주저해서는 안된다. 그래야 투자자들이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요즘 널리 회자되는 금융혁신도 기강이 바로서지 않고는 공염불로 끝날 것이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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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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