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보통 가수들은 음반을 내면 공연을 하는데, 어쩌다 보니 몇년 간 저희는 그 반대였네요."(종완)
8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카페 '벌스 가든 앤 하우스' 앞에서 우연히 만난 밴드 넬 멤버들[김종완(보컬)·이정훈(베이스)·이재경(기타)·정재원(드럼)]과 짧은 근황 토크를 나눴다.
밴드는 올해 4월 가수 이승환이 주최하는 '차카게 살자'를 시작으로 그린플러그드 서울, 렛츠락페스티벌, 부산국제록페스티벌 등 국내 굵직한 주요 페스티벌과 단독 공연(4월과 8월)까지 쉴 틈 없이 달려왔다. 데뷔 20주년이라 특별한 해일 법도 하지만 그저 해오던 대로 더 열심히 음악을 만들고 공연하는 게 일상이지, 특이할 것도 별다를 것도 없었다.
서울 도심 곳곳에서 진행 중인 '도심 속 넬 찾기'. 화면 속 영상에는 노을 배경으로 가오리가 지나가며 '오분 뒤에 봐'란 글씨가 뜬다. 사진/소셜미디어 캡처
이날 오후 4시 카페에서 열린 라운드 인터뷰는 10일 저녁 6시 발매될 8집 '칼라스 인 블랙(COLORS IN BLACK)'을 기념하기 위한 자리. 지난 2016년 발매된 'C' 앨범 이후 약 3년 만에 공개하는 정규다. 이날 인터뷰는 테이블 뒤 놓인 거대한 스피커로 타이틀 곡 '오분 뒤에 봐'를 트는 데서 시작했다. 통유리로 들어오던 노을빛 위로 가오리 한 마리가 넘실될 것 같은 초현실적 사운드. 실제로 '노을 속 가오리'는 밴드가 최근 서울과 부산 등 도심 곳곳의 대형 광고 화면에서 진행 중인 '도심 속 넬 찾기' 광고 영상에도 등장한다.
'뭐해', '오분 뒤에 봐'로 말을 거는 듯한 이 대화체의 곡은 '정말 이대로 죽어버리기라도 한다면 너무 후회할 것 같아'란 자기 고백으로 진행된다. 10대 혹은 20대 시절 친구들과의 만남이 점차 월중 행사로, 연중행사로 바뀌어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 좋았던 시절의 노스탤지어를 표현한 곡이다. "이제는 불의의 사고가 아니더라도 언제 죽어도 이상한 나이가 아니라서요. 그 친구들도 살면서 결국 10번, 20번 밖에 못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씁쓸했어요."(종완)
'오분 뒤에 봐'란 곡명은 어릴 적 스위스에 살던 종완이 당시 친했던 터키 친구로부터 듣던 말. 핸드폰도 없던 시절 집 근처로 종종 오던 친구는 그에게 "시유 인 파이브(See you in five)"라 밥 먹듯 얘기했다. "왜 인진 모르겠으나 그 단어가 머릿 속에 맴돌아 메모를 해뒀어요. 평소 자주 쓰는 말은 아닌 것 같긴 한데, 오히려 개성도 있고 노래에도 잘 붙어 한국말로 실었어요."(종완)
"앨범 작업 중후반쯤 가면 타이틀 곡을 자연스럽게 얘기하게 돼요. 평소 제 의견을 강하게 얘기하는 편은 아닌데, 이번에 제 기준에서는 다른 곡들은 개성이 강하고 이 곡은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듣고 공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멤버들과 타이틀곡으로 좋을 것 같다 얘기해봤어요."(정훈)
'COLORS IN BLACK' 앨범 커버.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COLORS IN BLACK'은 애초 'BLACK'이 될 뻔 했던 앨범. 2년 전부터 밴드는 '어두운 앨범'을 계획했었다. 약간이라도 밝거나 즐거운 느낌이 있는 곡들은 모두 리스트에서 제거. 멤버들과도 수시로 "순수 블랙 앨범으로 가보자"고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 멤버들과 함께 간 태국 여행이 분명한 전환점이 됐죠."(종완)
올초 한달 간 밴드는 태국 파타야 인근 카르마 스튜디오로 떠났다. 숙식 제공이 되는 레지던스에서 먹고 자며 곡을 쓰고 녹음을 했다. 2년 전 부산으로 지방 공연을 갔을 때 본 미국 밴드 푸 파이터스 영상에서 영감을 받았다.
"집을 스튜디오로 개조해 수영도 하고 바비큐도 구워먹는다는 그들을 보며 이런 곳이 어딘가엔 있지 않을까 했어요. 실제로 도시적이지 않은 느낌의 스튜디오였고, 거기서 멤버들끼리 음악적 동료로서 마음이 편해졌던 것 같아요. 분명 음악에 대한 엄청난 압박감도 있었지만, 우리끼리 음악을 순수하고 즐겁게 즐긴다는 걸 느꼈던 시간." (종완)
그 시간의 겹은 완전 암흑 같다 느껴지는 검정의 무게를 중화시켰다. 하나의 커다란 어둠이라 생각했을 땐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색 같아도, 여러 개의 색이 섞여 까맣게 됐다 생각하면 받아들이기 수월했다. "슬픔, 좌절, 절망, 우울 같은 감정들은 흔히 뭉뚱그려 어둡다고 표현하지만, 그것에도 각자 나름의 색깔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렇다고 어두운 걸 다 뺐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밝은 가사는 거의 없지만 그에 대비되는 사운드도 그렇고, 컬러감 있는 앨범은 된 것 같아요."(종완)
밴드 넬.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밴드는 어둠의 계기를 지난 2~3년 간의 개인적인 일들에서 찾았다. "주변에서 여러 안좋은 일들이 있었고 생각이 바뀐 계기가 됐어요. 이런 일들이 왜 생기고, 일어났을 땐 어떻게 반응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얘기하다보니 어두워진 것 같지만. 지금 내 감정이 이러니 음악으로 만들어야 겠다 했던 것 같아요. 머릿 속에 온통 그런 게 있는 데 밝은 걸 하려 하는 자체가 되질 않고."(종완)
어둠을 중화시킨 태국의 시간. 북유럽에 가까운 정서를 왜 그곳에서 그렸을까. 무겁고 진지하기만 하던 공기가 푸켓 만큼 뜨겁고 천진해진다. "일단 멤버 모두 푸켓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종완의 말에 모두가 웃는다.
"저희끼리 푸켓을 처음 간 게 아마 26살이었을 거예요. 그때부터 풀빌라를 빌려 수영하고 같이 술 먹고 음악을 크게 트는 로망 같은 게 있었어요. 간섭받지 않고."
"갈 때마다 항상 한국에서 얘기할 때와 다른 진솔한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나요. 깊이 있는 얘기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고. 글쎄요. 북유럽은 거리도 멀고 음식이 맞을지도 잘 모르겠는데, 다음에 기회 되면 뭐 한 번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