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등용 기자] “우리가 그동안 주장해온 것은 무조건적인 신일철공소의 보존이 아닌 어린이집, 지역 주민과 함께 하는 행정을 통해 함께 하는 장소로 만드는 것이다”(김경남 시민활동가)
인천시 동구 만석동에 자리한 신일철공소 철거를 두고 지역 사회가 들끓고 있다.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들은 신일철공소가 산업 유산적 가치가 있는 만큼 이를 보존해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왔지만, 동구청은 이를 무시한 채 신일철공소를 주민 몰래 철거해 갈등은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를 비롯한 인천 지역 시민사회문화단체가 13일 신일철공소 철거 터 앞에서 인천시 동구청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정등용 기자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를 비롯한 인천 지역 시민사회문화단체는 13일 신일철공소 철거 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구청의 행정 방식을 ‘폭력배 집단’이라고 규정하고 정면 비판했다.
김경남 시민활동가는 “지금과 같은 동구청의 행정이 과연 지역 주민을 생각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면서 “지금부터라도 동구청은 주민들에게 모든 걸 솔직하게 얘기하고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단체에 따르면 동구청은 지난 9일 밤 주민들이 잠 든 틈을 타 신일철공소 철거 작업을 진행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5일 철거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주민 반발이 워낙 거세 한 차례 무산된 바 있다. 이후 동구청은 13일 주민과 동구청장간의 면담을 약속했지만 지난 9일 기습 철거로 공수표가 돼 버렸다.
특히 철거 과정에서 만석동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외지 방문 안보 교육이 예정돼 있었던 터라 많은 주민들이 철거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역 사회에 따르면 동구청은 철공소를 재난 건물로 판단, 철거 작업을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신일철공소에는 석면 슬레이트 지붕과 외벽에 문제가 있어 인근 어린이집 학부모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지붕과 외벽 수리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건물 철거로까지 끌고 가는 것은 ‘과잉 행정’이란 게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민운기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간사는 “분명히 완전 철거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면서 “석면이 문제가 되는 부분만 수리하면 되는데 동구청이 무리하게 사업을 진행했다”고 꼬집었다.
신일철공소가 가진 역사적 가치도 시민단체들이 철거를 반대하는 이유다. 신일철공소는 고(故) 박상규 장인이 1974년부터 2007년까지 목선의 건조와 수리에 필요한 배 못과 보도 등을 제작하던 대장간이었다. 특히 박상규 장인은 우리나라 유일무이의 배 못 원천 기술자로 알려져 있다.
신일철공소는 박상규 장인의 마지막 작업 현장이자 고대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온 우리나라 조선사와도 연결돼 있는 곳으로 평가 받았다. 내부에는 박상규 장인이 사용하던 대장간 시설과 장비 일부 및 연장들이 남아 있었다.
이에 지역 주민들은 신일철공소가 바닷가 마을 만석동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잘 담아내고 있는 만큼 역사 문화 교육ㆍ체험 공간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민 간사는 “박상규 장인이 남긴 것들을 통해 일제 강점기부터 광복, 한국전쟁, 근대 산업화 시기의 시대상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목선을 중심으로 한 조선업의 변천 과정을 한 눈에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 주민과 동구청 간에 협의 과정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동구청은 유적 분야 전문가들과 관계 공무원, 주민들이 참석하는 도시유적위원회를 열고 의견을 들었지만 여기서도 철거의 찬반 의견이 팽팽히 엇갈려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와 관련 동구청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 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관계자는 “답변하기 어려운 입장”이라며 즉답을 회피했다. 다만 인천시 관계자는 “동구청이 전문가 회의를 두 차례에 걸쳐 했고, 거기에 따른 판단을 한 것”이라며 “인천시 입장에서는 신일철공소 철거 문제가 동구청 관할이다 보니 이렇다 할 입장을 내기가 애매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신일철공소는 외벽이나 석면 문제가 심한 시설”이라며 “문화재로서 보존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일반인들이 봐서 알 수 없고 전문가들이 판단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회견 중간에는 지역 주민들이 한 두명씩 다가와 주최 측이 마련한 국화를 들고 헌화하기도 했다. 한 지역 주민은 “신일철공소가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마당에 공무원들을 동원해 이렇게 하는 것은 조직 폭력배나 다름 없다”고 강조했다.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를 비롯한 인천 지역 시민사회문화단체가 13일 신일철공소 철거 터 앞에서 기자회견 후 묵념하고 있다. 사진/정등용 기자
정등용 기자 dyzpow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