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제약바이오기업들의 기대를 모았던 파이프라인들이 좀 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일부 성과를 달성한 기업들도 존재하지만, 연초 기대를 모았던 대부분의 기업들이 고배를 마시며 기업가치에 적잖은 타격을 입은 상태다. 연이은 국산 신약개발 실패는 그동안 높은 잠재가치에 쏠렸던 시장의 관심과 믿음 역시 빠르게 식히는 요소로 작용 중이다.
영세한 산업 규모에 막대한 신약개발 비용 조달을 위해 상장을 주요 수단으로 사용해온 신약개발 벤처들은 부정적 결과 도출 이후 시장의 차가운 평가와 뭇매를 맞고 있는 상황이다. 냉정한 시장논리에 결과는 중요하다. 특히 개인 투자자들의 돈이 쏠린 무대라면 반응은 더욱 격렬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싸이클이 산업 호흡에 비해 너무 빠르다는 점이다.
호흡이 빠르다 보니 기대와 실망의 변주폭이 지나치게 크다.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희망으로 꼽혔던 기업이 하루아침에 역적으로 돌변한다. 한 개의 신약물질 발굴을 위해 수만번의 실패가 불가피한 제약산업의 특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흐름이다.
현재 글로벌 바이오시밀러 시장에서 주도권을 쥔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사례를 돌아보자. 전 세계 무대에서 미미한 경쟁력을 지닌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이 어떤 글로벌 대형 기업과 견줘도 밀리지 않을 양사를 배출할 수 있던 배경엔 뚝심있는 투자가 있었다.
바이오산업을 넘어 벤처 신화로 자리잡은 서정진 셀트리온그룹의 회장의 성공은 사업 초기 부정적인 시장의 시각을 뒤로한 꾸준한 투자가 이끌었고, 삼성바이오에피스 역시 다른 분야에 비해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투자를 결정한 모그룹의 든든한 지원이 자리하고 있다.
실제로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은 지난 12일 창립 이후 처음으로 개최된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처음으로 시장 매출 1조원 달성이 전망된다고 밝히며, 창립 불과 8년여 만에 해당 성과를 낼 수 있던 원동력으로 초기 적자를 낼 것을 알면서도 그룹(삼성)에서 투자를 해준 부분을 꼽았다.
이제 모두가 신약개발의 어려움에 대해 절감했다. 그동안 막연하게 어렵다고만 생각했다면, 특히 올해는 다양한 현실의 벽과 변수를 그 어느 때보다 체감한 시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한계로 느끼기 보단 학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걸 시장과 기업 모두가 명심해야 한다. 투자가 필수적이지만, 인내도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신약개발이라는 궁극의 목표로 가는 해답을 멀리 있는 글로벌 대형 제약사의 신약보다는 가까운 국내사 시밀러(복제약) 성공 사례에서 찾아보는 것도 성공으로 가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정기종 산업 2부 기자(haregg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