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법조계에서는 상갓집에서의 항명이 법무부가 추진하는 검찰 개혁을 위한 인사의 정당성을 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직제개편 후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한 중간간부급(차장·부장급) 인사가 며칠 안 남은 시점에서 양석조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 선임연구관(차장검사)이 심재철 반부패·강력부장(검사장)에게 상갓집에서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과 관련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처분 의견에 대해 고성을 지르며 항의한 것은 향후 법무부 인사에 대한 반발이 불가피했다는 명분을 얻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차장검사의 항명은 명확한 상갓집 추태로 인식되면서 검찰이 자충수를 뒀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에 최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에 대한 항명 발언이 자충수가 돼 중간 간부 인사를 단행하는 명분이 됐다는 지적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후배 검사들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이후 심재철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을 들이받으면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인사에 대한 빌미를 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국 전 장관이 이미 기소가 됐는데도 이 시점에서 처분에 항의하는 발언을 한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양석조 선임연구관은 지난 18일 서울 강남에 있는 병원 장례식장에서 직속상관인 심재철 부장에게 "조국 전 장관이 왜 무혐의인지 설명해보라"라면서 고성으로 항의했다.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을 포함한 간부 다수가 참석하고 있었지만, 양 연구관이 발언할 때 윤 총장은 잠시 자리를 비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재철 부장은 지난 16일 검찰총장 주재 회의에서 "조 전 장관의 혐의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수사를 담당한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 이정섭)는 청와대 민정수석 당시 유 전 부시장의 비위를 확인하고도 감찰을 중단을 지시하는 등 직권남용 혐의로 조 전 장관을 서울중앙지법에 불구속기소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구내식당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에 대해 추미애 장관은 문제가 된 장례식장 발언에 대해 경고했다. 추미애 장관은 "대검의 핵심 간부들이 심야에 예의를 지켜야 할 엄숙한 장례식장에서 일반인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술을 마시고, 고성을 지르는 등 장삼이사도 하지 않는 부적절한 언행을 해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돼 법무검찰의 최고 감독자인 법무부 장관으로서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동안 여러 차례 검사들이 장례식장에서 보여 왔던 각종 불미스러운 일들이 아직도 개선되지 않고, 더구나 여러 명의 검찰 간부들이 심야에 이런 일을 야기한 사실이 개탄스럽다"며 "법무부는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검찰의 잘못된 조직문화를 바꾸고 공직기강이 바로 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0일 오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 검찰 관계자는 "상갓집에서 검찰이 보인 추태는 종종 있다"며 "하지만 이번 일은 인사를 앞두고 검찰 간부들이 작정하고 도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지난 고위 간부 인사 이후 대검에 맞지 않는 인물이 들어온 것처럼 작정하고 망신을 주려고 한 것"이라며 "중간 간부 인사에서도 소위 '대윤 라인'이 물갈이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 아닌가. 인사에 반발할 명분을 쌓는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 자리에 기자도 있었다. 대놓고 기사를 쓰라고 한 것"이라며 "항명을 염두하고 마치 밑장을 깔고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검찰은 인사 시기에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한다고 한다"며 "이미 인사를 예견하고 있으므로 언행을 조심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무부는 이날 오후 2시 검찰인사위원회를 열고, 차장·부장검사 등 검찰 중간 간부 승진과 전보에 대해 심의한다. 오는 21일 예정된 국무회의에 검찰 직제개편에 관한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개정안이 상정·의결되면 곧바로 중간 간부 인사가 단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윤 총장은 최근 법무부에 대검 중간 간부를 전원 유임해 달라는 내용의 의견을 전달했다. 대검은 중간 간부를 대상으로 의견을 취합해 이러한 의견을 냈다고 밝혔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대검 중간 간부 2명~3명 정도는 총장을 위해 지금 자리를 지켜줘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며 "하지만 간부 전원이 이와 같은 의견을 낸 것으로 통일됐다고 들었다. 사실상 유임을 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송경호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지난 16일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윤 총장의 지난해 7월 취임사 구절 중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이므로 오로지 헌법과 법에 따라 국민을 위해서만 쓰여야 하고, 사익이나 특정 세력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법무부 검찰국장 당시 주도적으로 추진한 직제개편을 우회적으로 반대하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0월1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모습.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