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청와대의 선거 개입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과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 한병도 전 정무수석비서관 등 청와대 인사를 포함한 주요 대상자 13명을 무더기로 기소했다. 내주 인사로 윤석열 검찰총장 사단으로 불리는 중간 간부(차장급)들이 교체되기 전 속도를 낸 기소여서 무리한 처분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황운하 전 대전지방경찰청장은 소환 조사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에 넘겨지거나 지검장 반대에도 이뤄진 기소 등의 문제가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부장 김태은)는 29일 백원우 전 비서관과 박형철 전 비서관, 한병도 전 수석, 황운하 전 청장, 송철호 울산시장, 송병기 전 울산시 경제부시장 등 13명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송 시장은 지난 2017년 9월 당시 울산지방경찰청장인 황 전 청장에게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에 대한 수사를 청탁했고, 황 전 청장은 그해 10월부터 해당 수사를 진행하는 방법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친 혐의를 받고 있다. 백 비서관은 송 전 부시장으로부터 받은 비위 정보를 재가공한 범죄첩보서를 그해 11월부터 12월까지 박 비서관을 통해 경찰청, 울산지방경찰청 등에 하달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이 지난해 12월9일 오후 대전 중구 대전시민대학에서 '검찰은 왜 고래고기를 돌려줬을까'란 제목의 저서 출간을 기념하는 북 콘서트를 열고 '청와대 하명 수사 논란'을 둘러싼 자신의 입장 생각 등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검찰은 이날 윤석열 검찰총장,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등 대검 지휘부와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참석한 회의를 열어 이들의 기소를 결정했다. 다만 이 자리에서 이 지검장은 황 전 청장에 대해 소환 후 기소 여부를 결정하자고 주장하는 등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황 전 청장은 다음 달 4일 이후 검찰에 출석하겠다고 통지한 상황에서 이날 기소되면서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건강상의 이유로 불출석한 송 시장에 대해서도 추가 조사 없이 기소가 이뤄졌다.
앞서 황 전 정창은 지난 27일 자신의 SNS에 "두 달 전쯤 시작된 이른바 '하명 수사 논란'은 아직도 진행형"이란 글을 게시하는 등 그동안 검찰의 수사를 비판해 왔다.
황 전 청장은 "언론 보도를 통해 그간의 검찰 수사 진행 상황을 지켜보면서 스스로 돌이켜 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며 "그럼에도 혹시라도 검찰이 미리 짜놓은 사건의 틀에 억지로 꿰맞추는 수사를 진행하고, 그런 무리한 수사로 인해 피해를 겪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었다"고 밝혔다. 또 "무엇보다도 일방적이고 악의적인 언론 보도를 접한 일부 국민께서 당시에 뭔가 잘못된 일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는 것은 끔찍한 피해였다"고 주장했다.
앞서 수사팀은 지난 28일 이 지검장에게 다음 달 3일 중간 간부 인사로 수사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그동안 조사가 진행된 이들 대상자를 우선 재판에 넘기고, 인사 후 나머지 대상자를 조사하도록 하겠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수사를 지휘한 신봉수 2차장검사는 평택지청장으로 전보되지만, 김태은 공공형사2부장은 유임된다.
검찰은 나머지 관련자에 대해서도 차례로 수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이날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소환해 조사했다. 이광철 비서관이 이번 수사에서 검찰의 조사를 받은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이 비서관은 백 전 비서관 등과 함께 김 전 시장 측근의 비위 첩보 수집에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 비서관은 이날 오전 10시18분쯤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자리에서 "차분하고 절제되고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부 언론에서 제가 세 차례에 걸친 검찰 소환 조사에 아무 응답 없이 불응했다고 보도했다"면서 "누가 어떤 연유로 저에 관해 반쪽짜리 사실만을 흘리고 있는지 그것이 매우 궁금하다"며 출석을 거부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광철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관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청와대 하명 수사, 선거 개입 의혹 관련 수사를 받기 위해 출석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검찰은 오는 30일에는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임종석 전 실장은 이날 자신의 SNS에 "내일 오전에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한다"며 "비공개로 다녀오라는 만류가 있었지만, 이번 사건의 모든 과정을 공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이번 수사는 지난해 11월 사건을 울산지검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송할 때부터 논란이 됐다. 당시 검찰은 "사건 관계인 다수가 서울에 거주하고 있어 신속한 수사를 위해 이송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고발 후 1년8개월 만에 수사가 진행된 것에 대해 검찰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울산지방경찰청은 지난 2018년 3월 김 전 시장이 국회의원 당시 편법으로 후원금을 받았다는 진정에 따라 김 전 시장의 측근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수사했다. 경찰은 울산 아파트 공사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등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김 전 시장의 동생을, 또 다른 아파트 건설 현장에 특정 레미콘업체가 선정되도록 강요하는 등 직권남용 혐의로 김 전 시장의 비서실장 박모씨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했다.
이에 자유한국당은 같은 달 당시 수사를 지휘한 황 전 청장을 직권남용과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울산지검에 고발했다. 한국당은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를 진행하던 지난해 12월에도 청와대의 6·13 지방선거 개입 의혹을 제기하면서 임 전 실장과 한 전 비서관 등 8명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도, 황운하 전 대전지방경찰청도 검찰의 타깃은 명확하다"며 "유 전 부시장 고발은 지난해 2월이고, 황 전 청장 고발은 2018년 지방선거 때인데, 왜 뒤늦게 수사하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 수사는 개인 비리가 아닌 청와대를 목적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검찰 중간 간부 인사를 단행한 지난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검찰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