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기종 기자] "이거 말고 제약사 마스크로 줘요"
#서울 영등포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A씨가 최근 마스크를 사러 온 손님들에게 하루에 서너번은 듣는 말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획득한 제품들은 브랜드 별 차이가 없다고 설명을 해도 듣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연령대가 높을수록 제약사 마스크를 찾는 경우가 잦다는 설명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높아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우려 속 방역용 마스크 판매량이 급등 중인 가운데 제약사에서 판매하는 마스크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수급 부족을 겪으며 브랜드를 가릴 것 없이 동이 난 온라인 구매와 달리 여러 제조사 제품을 판매하는 약국 등의 판매처에선 기왕이면 제약사 제품을 선호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A씨는 "현재 시중에 판매 중인 보건용 마스크들은 대부분 미세먼지나 황사를 막기 위한 용도로 제조 및 판매 중인 제품인 만큼 미세입자 차단 효과를 나타내는 'KF' 수치 정도만 확인하면 되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제약사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대부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이라 제조업체가 생산량을 감당해내지 못하면서 추가 생산이 당분간 어렵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극적인 매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다. 현재 국내에서 보건용 마스크를 판매 중인 제약사는 국제약품과 보령제약, 녹십자엠에스, 조아제약, 동국제약, 동아제약, 일동제약 등이 있다. 현재 시중에 판매 중인 제약사 보건용 마스크는 대부분 지난 연말이나 올해 초 풀린 물량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국내 분위기상 보건용 마스크 판매가 급증했다고 해서 기업 입장에서 마냥 기뻐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실제로 체감되는 수혜도 없는 상태"라며 "미세먼지와 황사 시즌을 대비하기 위해 풀었던 물량과 해당 재고들이 단기간 내 해소됐다는 것 정도 외엔 의미가 없고 수요 급증 이후 추가 물량 제작이 불가능해져 기대할 수 있는 부분도 적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현재 물량 대란 사태로 이득을 보는 쪽은 제조사보다는 중간에 유통 물량이나 가격을 조정 중인 유통업자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그나마 국내 제약사 가운데 자체 제작 및 자동화 생산시설을 갖춘 국제약품은 상황이 조금 더 낫지만 생산물량이 한정돼 있는 만큼 큰 기대감을 갖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제약품은 지난해 생산라인 증설 이후 현재 월 80만~100만장의 마스크 생산이 가능하다. 오는 5월까지 생산량이 꽉 차 있는 상태지만 전체 매출 대비 마스크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고, 사태 진정 국면에 따라 주문 받은 물량 취소 역시 가능해 마냥 흐뭇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국제약품 관계자는 "수요가 급증한 만큼 매출에 일정 부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되지만, 사태가 마무리되고 나서야 집계가 가능하고 마스크 전문 제조업체들과의 생산량 차이도 워낙 커 그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라고 말했다.
4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실내아이스링크 출입구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관람객들이 관계자들에게 문진표를 확인 받은 후 입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