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는 막말과 몸싸움, 길거리 정치로 뒤엉켜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다. 진영 논리에 빠져 기득권 챙기기에 급급한 구태 정치에 대한 혐오감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그와 비례해 유권자들은 후진적인 정치 관행과 문화를 갈아 엎고, 민생을 최우선으로 하는 새로운 정치에 목말라 하고 있다. <뉴스토마토>는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향해 열심히 뛰고 있는 예비 후보들과 초재선 국회의원을 직접 만나보는 코너를 기획했다. (편집자)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갑질, 이른바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의 공익제보자인 정의당 박창진 국민의노동조합특별위원장이 국회의원 출사표를 던졌다. "노동자의 인권을 대변하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박 위원장은 정의당의 비례대표 예비후보로 나선다.
박 위원장은 2014년 '땅콩회항' 사건 피해자로 조현아 전 부사장과 대한항공 법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2심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2017년 정의당에 입당한 그는 지난해 9월 정의당의 국민의노동조합특별위원장에 임명돼 활동해왔다. 인터뷰를 하기 전 박 위원장으로부터 받은 명함에 메일 주소로 'justicefly'가 표기된 점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항공산업의 노동자로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이렇게 표기했다고 한다.
박 위원장이 여기까지 오게 된 데에는 고 노회찬 의원의 따듯한 말 한마디가 컸다. '땅콩회항' 사건 이후 바뀌지 않은 기업 내 분위기와 여론 문제로 힘들어했던 박 위원장에게 "사무장님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노 의원의 말 한마디는 그를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줬다. 홀로 외롭게 싸워온 박 위원장이 노 의원을 통해 위로를 받은 셈이다. 박 위원장은 이제 자신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정치의 영역에서 첫발을 떼려 한다.
박 위원장은 갑질에 대한 책임을 기업에 묻고 피해 노동자를 보호하는 '갑질 119법'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을 공약으로 준비할 계획이다. 그는 "노동권을 인권과 똑같이 존중하게 하는 법을 만들어내겠다"며 "직장 내 민주화를 이뤄내고 기업 문화를 개선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당내에서는 대기업의 갑질 사례를 고발하고 이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다음은 박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정의당 박창진 국민의노동조합특별위원장이 지난 1월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 근처 카페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21대 국회는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정치의 본질인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보다 발전해 나갈 수 있는 21대 국회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뽑아주셨으면 좋겠다. 이미 관습화 돼 있고 권력을 누리던 사람들이 우리를 대변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에 다양한 세력이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21대 총선이 그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자신을 대변해줄 수 있고 대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다양한 계층들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바라봐주시면 21대 국회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justicefly' 메일 주소가 인상적인데.
땅콩회항 사건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불평등, 반칙, 불공정을 대변하는 모든 게 쌓여서 만들어진 사건이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정의를 실현하고 싶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justice'라고 했다. 물론 정의당 영문 표기에 'justice'가 들어있기도 하다. 그리고 'fly'는 제 터전을 의미한다. 제가 항공산업의 노동자로 살았기 때문에 그 두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한 'justicefly'를 사용하게 됐다.
△정의당에서 국민의노동조합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어떤 일을 하는가.
우리나라에서 노동현장에서 본인의 권리를 보장 받지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근로기준법이 5인 미만의 노동자가 속해있는 기업에서는 적용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당에서 노동현장에서 본인의 기본적인 인권조차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다. 노동 인권을 대변하는 대변인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정치에 입문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2017년도 6월에 정의당에 자발적으로 권리당원으로 입당했다. 땅콩회항 이후 5년간 생존 투쟁하면서 우리 모두가 실제 보호받고 존중되고 있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하게 됐다. 조현아는 저렇게 불법을 저지르고도 당당한데, 왜 나는 보호를 못 받는가에 대해 의문이 있었다. 결국 이 문제는 정치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정치가 우리 삶을 규정하는 모든 법규 등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부 사람들은 반칙을 해도 당당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같은 사람이 방치돼 있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인 시민으로 자각하게 됐고. 그런 마음으로 정의당에 가입하게 됐다. 우리 모두가 다들 눈을 감다 보니 권력자들 중심의 소수 리그가 돼 버렸다. 이미 권력을 쥐고 있던 사람이 또 권력을 쥐게 됐다. 이런 말이 있지 않나. '국민들이 정치에 무관심 하게 되면 제일 나쁜놈들이 정치를 하게 된다'고. 이전의 제 삶을 돌이켜봤을 때도 제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시민이었기 때문에 쌓이고 쌓여서 땅콩회항이라는 핵폭탄이 오게 된 것 아닌가 생각한다. 정치 분야에서 저에게 맡겨진 역할이 있다면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심상정 대표는 어떻게 만나게 됐나.
심상정 대표는 이전부터 친분이 있었다. 땅콩회항 이후에 4년만에 '물컵 갑질' 사건을 계기로 우리 내부 노동자가 처음으로 용기를 내서 제보를 했다. 2018년 4월에 '물컵 갑질' 사건이 일어나고 그것이 언론에 보도됐다. 당시 그 기자가 어떻게 용기를 내게 됐는지 노동자에게 물었을 때 '지난 4년간 박창진 사무장의 용기와 생존기를 보면서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광화문 집회를 통해 사내 민주화를 요구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노동자 탄압이 쉬웠던 때였다. 몇몇 사람들이 불이익을 받는 일이 발생했고, 정치적인 영역에서 관심을 보내줘야만 내부 노동자가 보호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가 먼저 심 대표에게 저희 집회에 와서 발언을 해달라고 요청했고 심 대표와 인연이 이어지게 됐다. 본격적으로 행동을 같이 하게 된 건 그때가 처음 이었다. 심 대표도 대한항공 '물컵 갑질'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는 재벌 권력의 병폐, 세습 권력이 어떤 오만함을 갖게 되는가에 대해서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것이 규제되고 바뀌어야 한다고 공감했다. 심 대표가 그 과정에서 내부 노동자들이 건전하게 회사를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고 정의당과 저, 심 대표가 협업을 시작하게 됐다.
△정의당 내부에서 활동하면서 지금까지 본 정치는 어떠한가.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될 것 같다. 아직은 소수당이고 대중적이지 못한 당으로서 한계점이 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발의했을 때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법안 통과에 동의하지 않는 과정을 보면서 힘이 없기 때문에 바르고 옳은 길임에도 갈 수 없는 현실이 있다는 점에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 준연동형이긴 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통과됨으로써 정의당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면 그것을 계기로 다양한 의견이 발휘될 수 있는 다당제가 정착될 것으로 보인다. 다당제에 대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분도 있지만 양당제가 보여주는 극한의 폐해를 이미 우리는 봤다. 더 이기적이고 더 지역에 제한되는 정치적 활동밖에 못한다. 국민의 다양한 요구와 권리를 대변해줄 수 있는 대의정치가 힘들다. 다당제 문화를 계기로 정의당이 가진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박창진 위원장이 지난달 22일 국회 정론관에서 비례대표 후보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앞으로 어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되고 싶은가.
다수의 보통 사람을 대변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그런데 이 보통이라는 말이 평범함이라고 할 수 있다. 제가 개인적으로 깨달았던 것은 땅콩회항 사건 이전에 보통의 저는 정치에 무지한 사람이었다. 그 과정에서 5년간의 긴 투쟁을 해야 했다. 저는 한국 시민들이 깨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다. 이 사회의 내부 고발자는 도태되는데 제가 생존을 넘어선 정치적 시위 과정을 보여주면서 시민들이 '나도 저렇게 돼야지, 나도 내 권리를 지켜야지'라고 당당할 수 있는 좋은 선례가 되고 싶다.
△21대 국회에 입성하면 활동하고 싶은 상임위는 어디인가.
환경노동위원회를 제일 먼저 생각하고 있고, 두 번째는 국토교통위원회다. 대기업 위주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환경에서 노동자의 인권이 생산재 중에 가장 값싼 요소로만 취급을 받다 보니 자신의 노동권을 조현아로 대표되는 세습·자본권력이 강탈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땅콩회항 사건 당시에도 주위 모두가 '조현아는 그럴만하잖아, 오너일가잖아'라는 논리가 적용됐다. 환노위에 가서 직장 내 기업 문화를 바꾸고 소위 말하는 본인들의 책임 경영, 정확한 주주권이 행사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그것이 작동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들고 싶다.
국토위는 제가 한국 노동자를 대변할 수 있는 최적의 사람이라는 점에서 활동하고 싶은 상임위다. 철도와 항공 등 내부 노동자들의 노동권에 대해서는 기존 정치인들이 이해를 못한다. 국토위에서 활동하게 된다면 현실에 발을 담근 실제 경험을 가진 노동자가 그 분야에서 활동하는 첫 케이스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상임위에 욕심이 있지만 꼭 어떤 상임위가 아니더라도 법안을 만들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양하게 활동하겠다.
△국회 입성 후 발의할 1호 법안은 무엇인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갑질과 관련한 아이콘이 돼 버린 것 같다. 현재는 '갑질 119법'을 생각하고 있다. 갑질이라는 것이 단순히 목적을 위해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게 아니라 권력의 상위에 있으면 어떤 순간이든 타인의 인권이나 노동권을 강탈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땅콩회항 사건 이후 외국에 계신 교민분들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미국의 경우 이런 일이 벌어지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하고 방치돼 있고 존중받지 못하는가. 저는 노동권과 인권을 똑같이 규정해서 이를 법제화 하겠다. 실제 제 인권이 강탈 당하는 사건, 사고가 났는데도 제가 증명을 못하면 상대가 처벌받지 못하는 법을 바꾸겠다. 이런 일만 저질러도 벌을 받는 것이라고 법을 명료화 시켜줘야 한다. 이것이 정치의 영역이고 그것이 법제화의 문제인 것 같다. '갑질 119법'을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또한 현재 근로기준법의 경우 5인 미만 노동 사업장에서는 지금 적용이 안 되고 있다. 어떤 노동자라도, 1인이든, 2인이든 모든 노동자가 동일한 기준을 받도록 법을 개정하겠다. 그리고 고 노회찬 의원이 발의를 했다가 입법화 하지 못했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다시 발의하고 싶다. 저도 노동자로 살았기 때문에 비행기에서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위협할 수 있는 일들을 많이 봤다. 그것을 방치하는 큰 이유는 고용감독원이 지적해봤자 별다른 것이 없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3000만원 벌금에 그치는 일이다. 노동권과 인권을 존중하는 법을 만드는 것이 주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대기업의 갑질을 고발하는 역할도 하는 것인가.
제가 땅콩회항 이후에 지난 5년간 정말 외로웠다. 2018년 물컵 갑질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언론에도 많이 보도됐지만 머리에 종양이 나는 등이 몸이 힘들었다. 당시 소송도 제가 기대했던 것처럼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이 정도면 의지를 분명히 표명했다고 생각하고 회사를 관둘 생각이었다. 물겁 갑질 사건이 일어나면서 분위기가 바뀔 줄 알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1인시위를 대한항공 본사에서 했는데 그곳에 고 노회찬 의원이 오셨다. 당시 노 의원이 저에게 '그동안 너무 힘드셨죠. 인간이 해서는 안 될 행위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았다. 그 사건과 관련된 사무장님의 잘못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씀해줬다. 여론 문제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괴로웠는데 노 의원이 '사무장님의 잘못이 없다'고 했을 때 눈물이 핑 돌았다. 현재 우리 구조 속에서 자신의 잘못이 없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수많은 이들이 있다. 제가 원내에 진출하지 않더라도 그분들과 연대하겠다. 저에게 연대와 지지를 보내준 그분들의 손길들을 통해서 생존했던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제가 생존의 가치와 희망을 그분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박창진 비례대표 예비후보 프로필
-현)정의당 국민의노동조합특별위원장
-현)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 지부장
-전)대한항공 객실사무장
박창진 위원장이 지난해 5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 직원연대지부 주최로 열린 '대한항공 갑질 규탄 1주년 촛불집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