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LG화학과 미국에서 전기차 배터리 소송을 치르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이 벼랑 끝에 몰렸다. 소송을 담당하는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예비판결에서 SK이노베이션 조기패소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로 최종 패소가 유력해진 SK이노베이션은 이의 신청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업계에서는 장기 소송전을 막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합의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ITC의 예비판결 소식이 전해진 후 "(ITC에) 당사의 주장이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결정문을 검토한 후 향후 법적으로 정해진 이의 절차를 진행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합의 가능성도 시사했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과는 선의의 경쟁 관계지만, 산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 협력해야 할 파트너"라며 "앞으로도 그 기조는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래픽/표영주 디자이너
조지아에 1조9천억 투자한 SK이노…'발 동동'
아직 최종 판결이 남았지만 예비판결이 뒤바뀐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최종 승자는 LG화학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종 패소 시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부품과 소재에 대한 미국 내 수입을 할 수 없게 된다. LG화학은 배터리 관련 전 품목을 수입할 수 없게 된다는 주장이지만 SK이노베이션은 구체적으로 어떤 품목이 금지될지 아직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피해 규모는 알 수 없지만 LG화학 승소 시 SK이노베이션의 미국 배터리 사업 육성 계획에는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3월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조지아주에 1조9000억원을 들여 배터리 공장을 착공했다.
2022년 양산을 시작하는 이 배터리 공장은 연간 9.8GWh를 생산할 수 있는데 60kW 순수전기차 기준 17만대에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다. 지난해 미국 전기차 시장 규모가 52만대 수준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며 큰 투자인 셈이다. 폭스바겐과도 이미 공급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수입 금지로 인한 피해는 어떻게든 최소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LG화학도 SK이노베이션이 이의 절차에 나서 소송이 장기화하면 득보다는 실이 크다. 이미 지난 1년간의 소송으로 2000억원에 달하는 소송 비용을 쓴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소송 장기화 시 피해는 최대 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 산업 선점이 중요한 시기에 불필요한 소모전을 하게 되는 것이다. LG화학 관계자는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적절한 보상이 있다면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배터리 관련 소송 중인 가운데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ITC가 SK이노베이션 조기패소 판결을 내렸다. 사진은 각 사 사옥. 사진/뉴시스
'CEO 회동' 가능성 솔솔
SK이노베이션이 불리한 상황에 놓이자 양측 최고경영자(CEO)들이 다시 회동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 사장은 소송이 한창이던 지난해 9월 만났지만 소득은 없었다. 큰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LG화학은 소송 시작부터 진정성 있는 사과와 피해배상, 재발 방지책 등을 강조했는데 현재 유리한 고지를 점한 만큼 만족할만한 성과가 나올 때까지 줄다리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2017년 중국 배터리 기업 ATL과의 소송 사례처럼 로열티를 주장할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된다. 당시 LG화학은 특허 소송에서 승소한 후 ATL 미국 매출액의 3%를 매년 로열티로 받는 것으로 소송을 마무리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번 판결에 대한 공식 판결문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의 신청이나 합의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아직 합의에 대한 논의는 시기상조"라며 "어떤 품목이 수입 금지가 될지도 최종 판결문을 받아봐야 알 것"이라고 말했다.
윤재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SK이노베이션은 계약불이행 및 향후 미국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최악의 결과를 방관하진 않을 것"이라며 "5000억원 내외 특허 구매 등을 통한 합의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wldud9142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