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IB로 성장하는 증권사에게 개인투자자란?

입력 : 2020-02-21 오전 6:00:00
최근에 증권업계 사람과 대화를 하다가 무슨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개인 투자자들이 직접 주식에 투자하는 것을 제한했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편하게 나누던 끝에 나온 말이었고, 그 전의 대화 주제가 최근 라임자산운용의 사모펀드로 인해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과, 금융회사의 불완전판매, 공모펀드 시장의 부진, 인기상품만 쫒아다니는 투자행태 등에 대한 것이었기에 그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스스로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정성적, 정량적 능력을 갖춘 사람들에게만 주식 직접 투자를 열어주고, 그렇지 못한 경우엔 간접투자만 할 수 있게 해야 여러 가지 부작용과 논란을 줄일 수 있을 거란 의견이었다. 
 
사모펀드든 공모펀드가 됐든, 투자를 결정하기까지, 판매사 직원에게 설명을 듣고 궁금한 것을 묻고 최종적으로 사인을 하는 그 과정에서, 직원들이 거짓말로 고객을 속이지 않는 한, 투자로 인해 발생한 이익과 손실의 책임은 투자자에게 있는 것이 맞다. 하지만 아마도 앞으로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온갖 소송들은 불완전판매에 맞춰질 가능성이 높아 금융투자회사들로서는 억울할 만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때마다 이런 일을 반복하느니 차라리 개인영업의 고리를 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번 라임 펀드 피해의 상당액이 개인이 아니라 기관에서 투자한 자금이었으니 이런 근거는 말이 안 되고, 사실 그의 말도 순간적으로 욱한 마음에 튀어나온 말이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말을 흘려들을 수 없는 것은, 증권사들의 매출과 이익에서 개인을 대상으로 한 사업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다수의 증권사들은 투자은행(IB)과 자기자본투자(PI) 부문을 키운 덕분에 사상 최고 실적을 내고 있다. 자산관리(WM) 부문도 키운다지만 사실 그 대상은 일반인보다는 자산가에 맞춰져 있다.  
 
개인투자자 덕분에 빠르게 성장한 키움증권이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는데, 그 이유가 IB와 PI로 인한 것이었다는 사실, 게다가 비리테일 실적이 리테일 실적을 넘어섰다는 점은 현재 증권업계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또 다른 증권업계 누군가의 표현처럼 어쩌면 이게 분기점일지도 모르겠다. 낮 시간에 시내 증권사 지점 몇 곳에 들러보면 그야말로 휑하다. 증권사들이 어느날 갑자기 지점을 더 줄이겠다고 발표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다. 
 
돈은 정말 잘 벌고 있는데, 증권사들은 이제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만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됐는데, 그게 그리 좋게만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지난주 지인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십수년째 보유 중인 ‘미차솔’(미래에셋차이나솔로몬펀드) 수익률이 드디어 –1%까지 왔다는 것이었다. 13년 투자해 아직도 손실구간인데 그는 조금만 더 버티면 플러스로 돌아설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보이진 않았지만 아마 해탈에 가까운 미소였을 것이다. 2007년 펀드 대호황기에 가입해 오랜 기간을 꿋꿋하게 버틴 그. 길고 긴 시간만 본다면 투자의 표상으로 삼을 만했지만, 성과는 투자자의 어리석음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가 흘려보낸 십수년은 공모펀드의 쇄락과 궤를 같이 한다. 그와 함께 증권사의 관심도 개인에게서 멀어졌다. 이젠 개인에게 주식투자를 제한하자는 말까지 나온다. 
 
대한민국의 투자문화를 바꾸는 건 투자자 개인일까 금융투자업계일까? 아침마다 출근길 라디오에서 듣는 퇴직연금 광고가 참 공허하게 들리는 요즘이다. 
 
김창경 증권부장 /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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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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