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가까운 친지의 전화를 받았다. 상가 등을 지어 분양하는 걸 업으로 삼고 계신 이 분은, 내가 오랫동안 주식투자를 했고 또 주식시장 언저리에 오래 머문 기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동안 한 번도 주식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런데 이 분이 드디어 “주식 사야 하는 것 아니냐? ○○종목 어떠냐?”고 물었다. 잘 모르는 종목인데 잘 알아보고 투자하시라는 대답이 시큰둥했는지 통화는 간단하게 끝났다.
20년 동안 주식에 눈을 주지 않았던 사람마저 관심이 생길 만한 때인가 보다. 그래서겠지만 3월 들어서 23일까지 개인 투자자들이 순매수한 코스피 주식만 9조7481억원에 달한다. 하루 평균 6000억원이 넘는 돈이다. 2월에 매수한 4조8974억원까지 더하면 두 달도 안 돼 14조6455억원어치 주식을 퍼담은 것이다. 과거 폭락의 마무리 신호로 여겨지곤 하던 개인의 투매는 아예 찾아볼 수가 없다. 개인의 기세가 워낙 세다 보니 평소 급락장에서 지수방어 역할을 했던 연기금이 상대적으로 하찮아 보일 지경이다.
도대체 시중에 유동성이 얼마나 많기에 공포가 지배하는 시장에서 개인 매수가 이렇게 강하게 이어질 수 있는 것일까? 아니 그보다, 개인들은 무엇을 그리 확신하기에 이렇게 순매수로 밀어붙이는 걸까?
아마도, 지금의 순매수 행진은 과거 몇 차례 반복된 매머드 급 위기가 남긴 교훈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당시의 흔적을 좇아 지금은 도망갈 때가 아니라 사야 할 때라는 것을 과거의 자신 또는 선배들의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다. 그런데 내용이 너무 공격적이라는 점이 문제다.
세계 증시를 주도하는 미국 뉴욕증시가 10년 넘게 이어진 강세장을 마무리하는 국면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준 역할을 했다. 이 정도 오래 지속된 강세장은 한두 달의 하락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V자 반등도 무리다. 하락을 끝내고 다시 상승으로 돌아서기 위해서는 ‘조정’이란 시간이 필요하다. 예측 못한 돌발변수로 인해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그 문제만 해결되면 예전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희망일 뿐이다.
급락장세에서 패닉에 빠지지 않고 매수로 대응하는 것은 긍정적일지 몰라도, 지수 하단이 어딘지 확인하지 않은 채, 하락과 조정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총알을 연사로 한꺼번에 당겨버리는 듯한 모습이다.
게다가 보유현금을 넘어 신용까지 끌어다 풀베팅하는 투자자들이 많다는 사실이 더욱 우려스럽다. 대한민국 대표주 삼성전자를 신용매수한다고 성공이 보장돼 있는 것은 아니다.
약세장의 미덕은 버티기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대응하고 견딜 수 있게 현금비중을 유지한 채로 종목을 선별해 천천히 모아가야 한다.
미국은 언제나처럼 금리인하, 양적완화 등 달러의 패권을 뒷배로 한 발권력을 앞세워 위기를 극복해나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이 또 한번 ‘양털 깎기’를 당한다면, 우리 국민들은 아무 짓도 안 했는데도 글로벌 기준으로 그만큼 보유자산의 가치가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아무 짓도 안 하면 안 된다. 적극적으로 자산 가치를 지키는 투자를 해야 한다.
주가는 다시 오를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이번에도 자신 있게 ‘롱’에 걸겠다. 하지만 언제일지를 모른다. 위기를 몇 번 겪어본 경험칙에 따르면, 그때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중간에 탈락하고 싶지 않다면 조급함과 레버리지는 버리기를 바란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