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작가 죠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Decameron)’은 14세기 페스트의 대유행을 배경으로 한 고전소설이다. 유럽에 창궐한 흑사병을 피해 시골로 도피한 이들이 열흘 동안 100가지 이야기를 풀어낸 단편모음집에는 4분의 3의 목숨을 앗아간 괴질의 아비규환이 잘 묘사돼 있다.
코로나19가 창궐한 현 시대의 데카메론은 경제활동의 한 축인 서민들의 몰락 위기를 빼놓을 수 없다.
서민의 어려움은 늘 주변으로부터 들려온다. 감감무소식이던 초등학교 동창의 전화엔 안부 대신 질문공세가 쏟아졌다. 세종관가 출입기자인 나에게 ‘속 시원한 답변’을 기대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바로 온 국민이 궁금해 하는 ‘재난소득지원금’이다. 정부·정치권은 사상 유례없는 현금성 지원에 합의했다.
정부가 밝힌 긴급재난소득지원금은 소득 하위 70%에 최대 100만원을 주는 방안이다. 재원 9조1000억원은 소비를 진작시킬 수 있는 거대 유동성 자금이다. 지역화폐를 받아 정해진 기간에 사용하면 상당한 소비진작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 나온 현금성 지원 대책은 여전히 논란이 덩어리다. 돈을 주겠다는 정부 대책은 나왔지만 내가 대상인지 여부를 알 수 없어 기대감만 고조된 분위기다. 더욱이 정부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도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갑론을박이 상당하다.
1·2·3·4인 등 가구단위가 제시됐지만 소득만을 기준하는 지, 재산까지 포함하는 지, 보유 부채까지 감안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돈다.
정부 안팎에서는 건강보험료 납부액을 기준으로 둘 수 있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더욱이 고액 자산가를 염두해 소득만 따지지 말고 재산까지 포함해야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그러다보니 일정 금액을 넘는 부동산이나 금융재산 등 재산보유자가 ‘컷오프’될 유력안도 감지된다.
하지만 두 가지 개념이 충돌한다.
우선 ‘긴급재난지원금’은 코로나19로 어려운 국민들의 생계를 지원하는 게 기본 취지다. 또 하나는 코로나19 진정 시기에 맞춘 ‘소비 진작’이다. 다시 말해 정말 어려운 사람들에게 주는 ‘생계형 지급’인가, 대다수 국민들이 일정기간에 지역화폐를 사용하는 등 ‘소비진작’ 효과로 볼 것인가가 상충한다.
무엇보다 총선을 의식한 정치권과 달리 행정부인 홍남기 부총리로서는 ‘세수 감소’에 대비해야한다. 적자국채 발행만이 능사는 아니다. 해외 사례처럼 각 부처에 할당된 예산을 줄이는 등 예산 세출 구조조정도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다.
자영업자는 폐업위기에 내몰렸고 지난달 실업급여 신규 신청자는 전년보다 33.8% 증가했다. 사업체 종사자수 증가폭도 30만 명대에서 역대 최저인 10만 명대로 주저앉았다.
2차 지원은 없다고 못을 박았지만, 경제난국의 요동 때마다 기준이 돼버린 일회성 카드는 계속 회자될 것이다. 세금 낼 사람은 줄고, 지원금까지 받지 못한 국민들의 원성까지 살 수 있다.
한국에 첫 발생자가 생긴 후 아직 100일이 되지 않았다. 코로나19 데카메론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홍남기 경제팀은 고민해야한다.
이규하 정책데스크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