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상민 기자] 누군가에게는 스트레스가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스트레스를 오히려 자신이 넘어야 할 산으로 보고 이를 통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배우 이학주는 후자에 속한다. 연기를 하는 것이 재미있다는 그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 오히려 재미가 없다고 했다.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5월 16일 자체 최고 시청률 28.4%(닐슨코리아 전국 집계 기준)로 종영을 했다. 드라마의 인기가 뜨거웠던 만큼 출연했던 배우들에게도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배우 이학주 역시 박인규 역을 맡아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더욱이 이학주는 드라마에 등장할 때마다 극의 긴장감을 높이며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부부의 세계 이학주. 사진/SM C&C
박인규는 민현서(심은우 분)와 동거 중인 연인 사이로 인터넷 도박에 빠지고 연인인 현서에게 폭력을 일삼는 인물이다. 그는 집착과 의존을 사랑이라고 착각한 채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이학주는 박인규를 연기했지만 그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박인규의 행동이 모든 다 세다.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의 행동이 아니었다”고 했다. 이학주는 이러한 박인규가 굶주린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동물이 먹이감이 있으면 먹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며 “박인규를 그러한 느낌으로 연기하려 했다”고 밝혔다.
그렇기 때문에 이학주는 자신이 박인규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지 두렵기까지 했다고 했다. 이학주는 처음 박인규를 연기할 때 너무 두려워 촬영장에 도착에 차에 내리면서도 그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했다. 심지어 잠을 자지 못할 정도였다고 당시 느꼈던 감정을 털어놨다. 이러한 부담은 혹시라도 자신이 연기한 박인규가 우스워 보일 것이라는 걱정에서 비롯됐다. 극의 긴장감을 담당하는 인물인 만큼 분위기가 잡히지 않을 경우 민폐가 될 것을 우려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자신이 박인규를 안정적으로 연기할 수 있었던 것이 감독과 선배 배우들의 배려 덕분이었다고 했다. 그는 “감독님이 많이 도와주셨다. 김희애 선배도 내 연기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줬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또한 “박해준 선배는 감독님에게 먼저 제안을 해서 박인규와 이태오가 좀 더 도움이 될 것 같은 방향으로 만들어 줬다”고 밝혔다.
이러한 두려움에도 주변에 도움으로 이학주는 박인규를 완벽하게 연기해 ‘부부의 세계’의 극적 긴장감을 높였다. 더욱이 이학주는 극 중 지선우를 연기한 데뷔 36년차 대선배 김희애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마치 굶주린 들개와 같은 모습의 박인규를 완벽하게 연기했다. 하지만 카메라 밖 박인규가 아닌 이학주는 눌려 있었다고 했다. 그는 “사실 선배들 기에 눌려 있었다”고 했다. ‘부부의 세계’ 스태프들은 자신이 눌려 있었다는 걸 다들 알고 있다고 했다.
이학주는 선배들의 기에 눌려 있는 자신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되뇌며 박인규를 연기했다. 그는 “배우 이학주, 배우 김희애를 떠나 박인규가 지선우를 만났을 때 어떤 생각을 할지, 지선우를 어떻게 느꼈을지 많이 생각했다”며 “박인규 입장에서 지선우가 아무렇지 않게 보였을 것 같았다”고 했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박인규를 연기하다 보니 오히려 집중이 잘 됐다고 했다.
부부의 세계 이학주. 사진/SM C&C
박인규의 불나방 같은 모습에 시청자들은 늘 박인규의 등장에 긴장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 상에서 박인규를 욕하는 댓글이 넘쳐났다. 이학주는 대중의 반응에 "오히려 좋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박인규이기에 대중의 그러한 반응이 맞다. 그조차도 관심이다”고 했다. 사실 이학주는 악역 연기가 처음이 아니다. 결이 다르긴 하지만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도, ‘멜로가 체질’에서도 인상적인 악역으로 대중들에게 욕을 먹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김상범을 연기할 당시 이학주는 혼돈을 겪었다고 했다. 대중의 관심을 받긴 하나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기에 생긴 혼돈이었다. 그는 “나와 캐릭터가 분리가 안되는 시기였다”며 “당시에 혼돈을 겪으면 정립을 했다. ‘멜로가 체질’ 때문에 안 좋은 말을 들어도 '인물에 대한 평가이지 나에 대한 건 아니다'라고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오히려 캐릭터에 대한 정확한 반응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성장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스스로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고 이야기한 이학주는 드라마를 찍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친해지는 것 자체가 재미있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친구를 만드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촬영 현장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고 했다. 박인규라는 인물이 다른 캐릭터와 날을 세우는 만큼 다른 배우들과 거리를 두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현장은 계속 배우는 현장이었다. 근데 또 다른 재미가 있다”며 “장면을 완성하는 재미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 와중에 촬영 감독님이랑 심은우와는 많이 친해졌다”고 했다.
민현서 역할로 함께 호흡을 맞춘 심은우에 대해 “같이 연기를 하면 편안하다”며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특히 이학주는 극 중 박인규가 고산 역에서 민현서와 실랑이를 벌이고 좌절하는 장면을 찍을 때 심은우의 도움이 컸다고 했다. 그는 “감정이 안 잡혀 큰일 났다고 생각할 정도였다”며 “막상 촬영에 들어가 심은우의 표정과 행동을 보면서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고 당시를 상황을 설명했다. 심은우의 도움으로 촬영을 하면서 박인규가 된 거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부부의 세계 이학주. 사진/SM C&C
이학주는 자신이 캐릭터를 연기함에 있어서 영리하게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뿐이다”고 했다. 그는 과거 한 작품에서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조금 웃기게 보이게끔 하고 싶었다. 하지만 촬영을 하는데 해당 작품의 감독이 컷을 하고는 ‘생각이 딴데 가 있다’고 했다. 이학주는 그 경험을 한 뒤로는 한 번도 의도적으로 어떠한 이미지를 캐릭터에 입힐 생각을 하지 않게 됐다고 했다. 그는 “내가 영리하게 보여주지 못해서 그런 건지 몰라도 다 보인다”고 했다.
배우들은 하나 같이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 힘들고 고된 작업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이학주는 ‘부부의 세계’의 박인규를 이야기하면서도, 자신이 걸어온 길을 언급하면서도 유독 재미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이에 대해 이학주는 “연기가 재미있다. 물론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안 받으면 재미가 없다”고 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그 와중에 무언가를 해내고 해내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하고 이러한 과정이 자신에게 재미라고 했다. 그는 “재미있다는 개념을 넓게 생각하는 것 같긴 하다”고 웃으면 말했다.
스트레스마저 재미로 승화시킬 줄 아는 이학주는 대중에게 여러 가지 모습으로 기억되길 원한다고 했다. 그는 “이것도 어울리고 저것도 어울린다는 이야기. 다양한 모습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부부의 세계 이학주. 사진/SM C&C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