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 한국과 호주, 러시아, 인도 등 4개국을 초청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우리 정부의 고심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우리가 명실상부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것 아니냐는 기대어린 전망이 나오지만, 자칫 미국 주도의 '대중국 포위망'에 함께하는 모양새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열린 미국의 첫 민간 유인우주선 발사 현장을 방문한 뒤 백악관으로 돌아오는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재 G7을 구성하는 국가들은 시대에 매우 뒤떨어져 있다"며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다만 G7을 대체할 새로운 선진국 클럽을 추진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초청인지 여부는 아직 불분명하다. 1970년대 오일쇼크 대책 마련을 위해 결성된 G7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 등 7개국을 뜻한다. 이들 국가는 매년 돌아가며 정상회의를 주최하는데 의장국이 비회원국을 초청국 자격으로 부를 수 있다. 올해 의장국은 미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말 워싱턴에서 오프라인 회의를 개최하려 했지만, 코로나19 확산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이 불참 의사를 밝혔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회의 개최시기로 9월 뉴욕 유엔(UN)총회 전후나 미국 대선이 있는 11월 이후를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이 성사돼 한국이 G7 정상회의에 참석하거나 새로 출범하는 선진국 클럽에 합류한다면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영향력은 확대되고 국격 격상의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기념연설에서 "우리의 목표는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 현실화 되는 것은 만만치 않다. G7에 가입하려면 기존 회원국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다. 러시아의 경우 1997년 정식 참여해 G8이 됐지만, 2014년 3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제외됐다. 한국은 정치·경제·역사적으로 불편한 관계인 일본이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 '대중국 포위망' 구축에 있는 것 아니냐는 점도 문제다. 그는 노골적으로 "중국에 대해 함께 논의하기 위해 이들 새로운 국가들을 초대하고 싶은 것"이라고 언급했다. 초청국에서 중국은 제외하고 대신 러시아와 인도를 언급했다는 점에서도 줄세우기 의도가 드러난다. 최근 미국은 글로벌 공급망의 탈중국을 목표로 하는 경제블록 '경제번영 네트워크(EPN)'에 한국 참여를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31일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사전에 통보받지 않았다"며 "앞으로 미국과 협의해나가야 할 문제"라고 신중한 자세를 보이는 것도 그러한 점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미중 간 일종의 '전략적 모호성'을 당분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미중 갈등이 한반도 문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한국에 구애의 손짓을 하는 것처럼, 중국도 대미전선 구축을 위해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박차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코로나19 인도적 지원을 명분으로 대북 경제지원을 늘리고,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서 사실상 이탈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는 북한이 적극적으로 대미·대남 대화에 나설 이유를 없애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남북협력사업에도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미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열린 미국의 첫 민간 유인우주선 발사 현장으로 출발하기 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