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가가 연일 불을 뿜고 있다. 주가는 두 달도 안 돼 60만원, 70만원, 80만원을 차례로 돌파하며 새로운 경지에 들어섰다.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투자 패러다임으로 보는 사람이 많겠지만, 일부에서는 이를 삼성그룹의 재편과 맞물린 그림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은 기각됐으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 불법이 있었다는 혐의를 벗은 것은 아니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이 진행될 것이다.
이번 재판을 바라보는 다수의 시선은 불법이다, 아니다로 나뉜다기보다 ‘무죄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그래도 삼성 좀 그만 괴롭히라’는 쪽인 것 같다. 이런 엄중한 시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기업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허탈하다. 그들의 눈엔 삼성의 나머지 주주들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2015년 (구)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당시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이 부회장의 보유지분율이 높은 제일모직을 높게 평가하고 지분율이 낮은 삼성물산은 낮게 평가해 합병했다는 것이 이번 재판의 골자다.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 주주들은 조 단위의 손실을 입었다.
삼성은 ‘이 부회장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원이 어떻게 선고할지는 모르겠으나 삼성물산의 다른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의 주요 주주였으니 넓게 보면 국민 모두가 피해자인 셈이다. 그런데도 ‘삼성 좀 그만 괴롭히라’고 한다. 차라리 ‘이 부회장 좀 그만 괴롭히라’고 한다면 일종의 팬덤현상인가보다 할 수 있을 텐데.
똑같은 주주인데 누구는 이익을 얻고 누군 손해를 입는다. 분할과 합병을 반복하는 과정의 결과는 ‘예외 없는 우연’으로 대주주의 지배권이 강화된다. 이런 일이 얼마나 비일비재하면 ‘후계자와 같은 배에 올라타라’는 말까지 나올까?
오래 전 에버랜드는 전환사채를 시가(8만5000원)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7700원)에 발행해 이를 이재용 부회장이 인수, 다른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치면서 지분을 확보했다. 에버랜드는 다시 제일모직으로 또 삼성물산으로 녹아들면서 지금의 지배력을 갖췄다. 이걸 보고 배운 다른 많은 기업들도 승계 노하우를 실전에 적용, 수많은 주주들에게 엄청난 손실을 안겼다.
미국에서는 주식회사의 이사회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주주 간 이해상충 자본거래로 인해 일반 주주들에게 손해가 발생할 경우 선관의무(충실의무) 위반으로 배임죄가 되기 때문이다.
영화 ‘빅쇼트’의 실제 주인공 마이클 버리 사이언에셋매니지먼트 대표가 국내 중소형주에 투자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전 세계 중소형주 중에서도 한국의 중소형주가 특히 저평가돼 있다며 한국의 과학기술과 높은 교육 수준을 칭찬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 기업들은 엄청난 잠재력을 갖췄음에도 최대주주와 소액주주들을 차별하는 경영진 때문에 주식이 저평가돼 있다고 지적했다.
금수저의 1주와 흙수저의 1주는 똑같은 무게를 지녀야 한다. 그래야 주식투자는 기업 경영진과 대주주와 동업하는 것이라는 말을 할 수 있다. 주주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불법·편법 지분 늘리기를 원천 봉쇄할 수 있는 법 개정이 시급하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