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한일 갈등이 역사 문제와 무역 분쟁을 넘어 국제외교 무대까지 전 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일본 아베정부가 '과거사 반성'은 없이 사사건건 한국에 대한 노골적인 견제에 나서면서 우리 정부도 '극일'(일본 극복)에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30일 청와대에 따르면 정부 고위관계자가 최근 일본을 향해 "몰염치 수준이 전 세계 최상위권", "이웃 나라에 해를 끼치는 데 익숙하다"는 발언으로 작심 비판했다. 이는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정례 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국을 포함한 G7 확대 구상'에 "G7 틀 자체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내놓은 이후의 발언이다.
외교가에서는 청와대의 발언 수위에 주목한다. 통상 국가 간의 외교관계는 모호하며 완곡한 소위 '외교적 수사'를 통해 진행된다. '유감스럽다' 수준을 넘어 '몰염치하다'는 직설적인 표현은 극히 이례적이다.
결국 청와대의 이번 작심 발언은 일본 정부의 행보가 도를 넘었다는 판단에 따른 일종의 경고로 보인다. 일본이 한국을 '상호 신뢰하고 협력할 이웃'이 아닌, '눌러버려야 할 잠재적 적국'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그 배경에 있다. 최근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에서 지난 2년간 남북미 비핵화 협상을 물밑에서 줄기차게 방해했던 일본의 행적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간 '아시아 대표 선진국'을 자부하던 일본은 국제무대에서 라이벌 한국의 위상 강화를 꾸준히 경계해왔다. 2006년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 선출 당시 일본이 15개 안보리 이사국 가운데 유일하게 기권하는 등 막판까지 반 전 총장 선출에 반대한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의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직 도전에도 걸림돌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한국과 일본이 WTO 분쟁국인 것을 겨냥해 "차기 사무총장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주요국의 이해를 조정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WTO 사무총장은 지지도가 낮은 후보들이 차례로 탈락하는 과정을 반복해 최종 단일후보자를 회원국 전체가 만장일치로 추대하는 방식이다. 일본이 끝까지 반대하며 부정여론을 조성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청와대 측은 "국제사회, 특히 선진국들은 일본의 (몰염치) 수준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일본의 논리에 대항해 국제사회 여론을 조성할 필요성이 시급하다.
현재진행형인 '수출규제'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는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수출규제가 단순 징용문제를 넘어 한국 경제의 미래경쟁력을 미리 제거하려는 시도로 인식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 1980년 17배에 달한 한일 경제력 규모 차이는 2019년 3배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실질생활수준'(구매력평가 기준 1인당 GDP)은 2023년을 기점으로 한국이 일본을 앞서게 된다.
일본 정부는 자신들이 수출규제의 명분으로 삼았던 각종 제도적 미비점을 우리 측이 모두 정비했지만 규제 해제 논의에 소극적이다. 문제해결에 진정성이 있는지 의문을 갖게하는 대목이다. 일본은 오히려 오는 8월 한국 법원이 국내 일본 기업의 재산을 압류·매각해 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할 경우, 이를 계기로 대대적인 '2차 수출규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우리 정부는 1차 수출규제를 계기로 국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경쟁력을 향상시킨 것처럼 2차 수출규제에 적극 대응해 우리 경쟁력을 한층 높이겠다는 각오다. 코로나19로 '글로벌 가치체인(GVC)' 재편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비슷한 영역에서 충돌하는 한국과 일본의 경제전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지난 24일 국회에서 '소재부품장비산업 현안점검회의'를 하고 "소부장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더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며 소위 '소부장 2.0 계획'을 예고했다. 소부장 핵심 관리 품목을 기존 100개에서 300여개로 대폭 확대하고 2022년까지 기술개발(R&D)에 5조원 이상 투입한다는 내용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29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우리는 기습적인 일본의 조치에 흔들리지 않고 정면돌파하면서,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었다"며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강한 경제로 가는 길을 열었다"고 자신했다.
이어 "이제는 위기에 수세적으로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며 "'소재·부품 강국'과 '첨단산업 세계공장'이 되겠다는 담대한 목표를 분명히 하고 민·관이 다시 한 번 혼연일체가 돼 범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야 하겠다"면서 7월 중 관련 계획 공개를 예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4일 태국 방콕 임팩트 포럼에서 열린 '제22차 아세안+3 정상회의'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위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뒷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