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기본소득토지세' 카드를 꺼내면서 부동산 투기 억제와 경제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명확히 했다. 특히 기본소득토지세는 부동산 의제를 선점하면서 조세에 관한 국민의 저항심리를 낮추고, 자신의 대표 공약인 기본소득을 '브랜드화'한다는 전략을 드러낸 묘수라는 평가다.
29일 복수의 경기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28일 발표된 '경기도 부동산 주요 대책' 중 이 지사가 가장 오래 고민하며 공을 들인 건 기본소득토지세 도입이다. 이 제도는 부동산 불로소득 일부를 세금으로 거둬 국민에게 기본소득 형태로 주자는 주장이다. '토지는 공공의 재산'이라는 토지 공개념에 바탕을 뒀다. 이 지사는 이번 대책을 브리핑할 때도 "우리나라 부동산 불로소득은 국내총생산(GDP)의 22%인 346조원"이라며 "공동의 자산인 토지로부터 생겨난 불로소득을 조세로 환수해 구성원 모두가 고루 누리게 해야 한다"라고 했다.
사실 기본소득토지세는 이번에 갑자기 나온 말이 아니다. 이 지사는 성남시장으로 재직 중 대선주자로 부상하던 2017년 1월부터 기본소득토지세 실시를 주창했다. 관계자들은 "당시 내부에서 기본소득토지세 이야기를 처음 했을 땐 '저 사람이 드디어 미쳐가는구나'라고 수군댈 정도였다"면서도 "정치의 역할은 억강부약(抑强扶弱·강한 자를 억누르고 약한 자를 돕는다)"이라는 이 지사의 철학을 가장 잘 드러낸 정책이라고 전했다.
흥미로운 건 기본소득토지세의 작명 전략이다. 이 지사는 2017년부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제도를 국토보유세라고 불렀다. 개명은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대중에 각인된 상징이 왜곡될 수 있어서다. 그럼에도 굳이 이번에 국토보유세를 기본소득토지세라고 부른 건 의제설정에 대한 이 지사의 고민이 엿보인 대목이다.
기본소득토지세 명명엔 두 가지 목적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먼저 국토보유세에 대한 국민의 저항심리를 낮추는 일이다. 국토보유세라는 이름은 그간 '토지를 가진 모두에게 세금을 걷는다'는 보편적 증세의 인상을 준 게 현실이다. 실제로 이 지사는 이 제도를 처음 주창할 당시 전국 유세 때마다 "토지를 가졌다고 다 세금을 걷는 게 아니다. 국민 95%는 혜택을 본다"며 제도를 이해시키는 데 상당한 시간을 써야 했을 정도다. 물론 기본소득토지세에도 '토지'라는 말이 들어갔다. 하지만 '땅을 가졌으면 세금 낸다'는 압박감은 없다.
아파트가 밀집한 경기도 수원시 전경. 사진/뉴시스
이 지사의 다른 대표 공약인 기본소득 지급과의 연계성을 확보, 기본소득을 '브랜드화'하는 차원도 있다. 그는 국토보유세라고 부를 때에도 확보한 세금은 기본소득 지급을 위한 재원으로 쓰겠다고 밝혔다. 2017년 제19대 대선의 더불어민주당 후보 경선에 출마해서도 "기본소득 지급을 위해서는 43조원 정도의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며 "재정 구조조정 28조원과 국토보유세 신설로 15조원을 충당하면 가능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대중이 아무 사전 지식도 없는 상황에서 국토보유세라는 이름만 듣고도 즉각적으로 기본소득을 떠올리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였다. 이 지사가 경기도지사 취임 후 아예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라는 말을 쓴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따라서 기본소득토지세라는 새로운 작명은 "기본소득 지급을 위해 부동산 불로소득을 목적세 형태인 기본소득토지세로 거두겠다"는 각인을 대중에 심어주는 효과를 노렸다는 분석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018년 11월21일 오후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열린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중앙정부에 이 제도 도입을 요청하면서 '전국으로 시행키 어렵다면 경기도라도 먼저 하겠다'는 강수를 둔 것도 주목된다. 정치권이 표심을 의식, 부동산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판에 증세 논란이 생길 일을 자처하는 건 그만큼 관련 의제를 선점하는 효과가 톡톡하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번 발표에선 기본소득토지세 도입만 언급, 구체적 실행안은 밝히지 않았다. 중앙정부에 제도를 건의하는 차원이므로 실행안을 말하는 건 오해를 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이 지사의 구상은 지방세법에 국토보유세를 만들고 세율, 용도, 시행 여부 등을 각 광역자치단체장에게 위임하는 방식이다.
이한주 경기연구원장은 "기본소득토지세든 뭐든 조세권은 중앙정부에 있으므로 정부가 나서달라고 촉구하는 중"이라며 "중앙정부가 힘들면 '경기도라도 시범적으로 하겠다', '만약 경기도가 실패하면 중앙정부도 하지 말라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정책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기본소득토지세 명명은 일종의 구호이자 정책에 관해 지지를 끌어내는 노력의 하나"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참여정부 때 종합부동산세 정책을 추진했으나 기득권의 저항으로 실패한 경험에 비추어 '제도에 대해 국민이 얼마나 동의하느냐'를 관건으로 본다"면서 "기본소득토지세를 국민에게 계속 인지시키고 효과를 제대로 설명한다면 다소 시간은 걸리더라도 큰 저항 없이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