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 와해를 모의하고 지시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사장)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 과 박상범 전 삼성전자서비스 대표 등 임직원들은 형량이 다소 줄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유죄가 유지됐다.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배준현)는 10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전 의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는 1심에서는 1년 6개월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판단이 뒤집혔다.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사장)이 지난해 12월17일 열린 서울중앙지법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재판부의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위법 수집 증거로 인한 증거능력 불인정'이었다. 1심 재판부는 '삼성전자 본사 인사팀 사무실'이 1차 압수수색영장에 기재된 장소이며 하드디스크가 은닉된 장소인 인사팀 직원 차량은 '자료 또는 파일이 옮겨진 경우에 해당, 적법하다고 봤다. 하지만 항소심은 영장에 기재된 수색·검증장소를 엄격하게 해석해 압수물이 있던 삼성전자 본사 인사팀 사무실이나 옮겨진 장소는 기재된 장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영장에 기재된 적법한 수색·검증 장소에서의 압수로 볼 수 없다"면서 "'CFO 보고 문건'은 위법 수집 문건이어서 증거능력이 없어 유죄 증거로 볼 수 없다. 이를 제외하고 피고인이 보고받았거나 공모했다고 볼 증거는 발견하기 어렵다"고 설시했다. 그러면서도 "보고 문건이 정당한 수집 증거로 인정된다면 결론을 달리할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이 의장에게 공모 가담이 없었다고 무죄를 선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라"고 당부했다.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아산 협력업체의 기획폐업 혐의와, 노조원들에 대한 표적 감사등 일부 혐의가 무죄로 판단되면서 1심에서 이 전 의장과 함께 징역 1년6월을 선고받고 구속된 강 부사장은 2심에서 다소 감형된 1년4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최평석 전 삼성전자서비스 전무와 박상범 전 삼성전자서비스 대표는 2심에서 2월이 줄어 각각 징역 1년과 1년4월을 선고받았다.
목장균 삼성전자 전무와 송모 삼성전자 자문위원은 1심과 같은 징역 1년,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과 박용기 삼성전자 부사장, 정금용 삼성물산 대표는 2심에서도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헌법상 권리인 단체교섭권을 무시했고 이로 인해서 근로자들의 정신적 고통과 피해가 적지 않다"면서 "노사 관계가 악화돼 사회의 지속적인 안녕과 발전을 저해한다"고 말했다. 이어 "부당 노동행위가 다수 노동자에 대해 계획적으로 이뤄진 점을 보면 관여자들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며 "향후 기업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양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에서 노조 설립 시도가 발견되자 삼성의 무노조 경영 방침을 관철하기 위해 노조를 와해하려는 '그린화 전략'을 기획한 혐의를 받았다. 구체적으로는 노조가 강성인 협력업체를 폐업시키고 노조원들의 취업을 방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협력사 사장들로 하여금 노조 탈퇴를 종용하고 노조원들 위주로 표적감사를 실시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경총을 내세워 노조의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하지 않거나 교섭 개시 일자를 최대한 늦추는 방식으로 교섭을 지연시키기도 했다. 노조 파괴 전문 노무컨설팅 업체, 정보경찰뿐만 아니라 노조 탄압에 반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염호석씨의 부친을 불법행위에 동원한 혐의도 있다.
앞서 1심은 기소된 32명 중 26명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이 전 의장과 강 부사장, 박 전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에게는 각각 1년6개월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