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제츠 중국 공산당 정치국 위원이 22일부터 1박2일간의 부산 방문 일정을 마치고 서둘러 되돌아갔다.
청와대는 "코로나 19 상황이 안정되는 대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조기 성사시키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지만 중국 측 발표문에는 시 주석의 방한 여부에 대한 표현이 아예 없다. 대신 '고위층의 교류와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는 데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는 표현으로 거듭된 시 주석 방한 요청에 대해서 두루뭉술하게 입장을 대신했다.
코로나 19가 재확산되는 기로에 선 엄중한 시기에 중국 측 고위인사가 서울이 아닌 부산으로 방한해서 우리 정부의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인 청와대의 서훈 국가안보실장을 만나 5시간여 동안 허심탄회하게 양국 간 현안을 나눈 결과치고는 터무니없이 내용이 부실하다. 양국 간 입장 차이 때문에 아무것도 합의하지 못했다면 나쁘지 않은 결과로 박수를 칠 만하다. 그러나 미·중, 한·중 및 남·북관계 등 우리 외교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양국 간 현안을 논의하고서도 밝히지 않은 합의사항이 있다면 2년 전인 2018년 7월 양 위원이 비밀리 방한해서 청와대를 방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 이상의 외교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단 양제츠 방한에 관해 우리 정부가 지나치게 배려하고 신경을 쏟은 것은 외교 관례상 지나친 '사대'라고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양제츠의 직책은 중국공산당 정치국 위원으로 당내에서 외교 사안을 총괄하는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이다. 중국은 공산당이 국무원을 지도하는 당 주도의 국가운영시스템으로 당과 국무원이 불가분의 관계이기는 하나 당과 국무원은 엄격하게 분리돼있다. 시 주석이 해외순방에 나설 때는 ‘국가주석’이다. 간혹 베트남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를 방문할 때, 순방행사 성격에 따라 중국공산당 총서기 자격을 내세울 때도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최근 중국을 정상적 보통국가가 아닌 중국공산당이 지배하는 독재국가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겠다는 의미로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자를 '국가주석(President)' 대신 '총서기(General secretary)'라고 부른 건 이런 공산당 독재체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만일 중국이 시 주석의 방한과 미·중 갈등 국면에서의 한국의 역할 등 민감한 양국 현안에 대해 실질적인 협의를 하려고 했다면 왕이 외교부장(장관)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공식 회담을 통해 논의하는 것이 옳다.
양제츠 역시 왕이 부장 직전에 외교부장을 오랫동안 역임한 외교전문가다. 그는 중국의 사드보복을 주도한 강경파로 분류된다. 중국의 외교기조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한한령 해제'와 시 주석의 방한 등 양국 현안에 대한 기조가 당장 전환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중국 측 주요 인사를 맞이하는 의전에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양 위원은 국무원 총리나 부총리급, 혹은 부주석급 이상 혹은 7인의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아니다. 25명의 정치국 위원 중 1인에 불과하다. 양 위원에 맞는 의전을 해야 했다. 중국 공산당 정치국 위원을 과하게 접대하는 것이 동방예의지국 '소국'의 의전인가. 외교는 격에서 시작해서 격에서 끝난다.
그를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맞이한 것은 지나친 사대의전이라는 지적을 피할 길이 없다. 양 위원의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하다면 차라리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인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나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만나는 게 좋았을 법했다. 민주당은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와 교류협력 각서까지 주고받은 바 있다.
또 하나 지적할 것은 시 주석의 방한 문제다. 청와대는 시 주석의 방한을 오매불망 간청하고 있지만 중국은 딴청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시 주석은 한 번도 방한하지 않았다. 한국에 오는 대신 2019년엔 중국 최고지도자로는 14년 만에 북한을 방문, 김정은 체제를 지지하는 행보를 했다.
우리 정부가 시 주석 방한에 목을 맬 이유는 무엇인가. 사드보복 조치에 대한 사과와 해제 없이 시 주석이 방한하는 게 어떤 외교적·정치적 의미와 성과인지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는 2017년 중국을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베이징의 뒷골목에서 '혼밥'을 먹으며 외교적 홀대를 받은 기억을 삭제하지 않았다. 우리 청와대 출입 기자들이 그 베이징에서 중국 경호원들에게 뭇매를 맞던 장면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didero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