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로 살고 있는 오피스텔의 임대차 재계약 날짜가 돌아왔다. 처음엔 4년 살 생각을 하고 들어왔지만 6개월만 연장했다. 내년 봄에 이곳으로 오기 전에 장만한 길 건너 아파트로 입주하기 위해서다.
태어나 40년을 살았던 옛 동네를 떠났다가 돌아온 것이 2년 전의 일이다. 이곳에서 눌러 살 생각에 있는 돈 없는 돈 다 그러모아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매입했다. 오르는 집값부터 잡아놓고 4년 더 돈을 모아서 세입자를 내보내고 거주할 요량이었다. 어차피 갚아야 할 돈, 지난해 봄 아파트 전세 재계약 때는 보증금도 올리지 않았다.
지난 2년 사이, 핫한 지역은 아니지만 시세가 꽤 올랐다. 그때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가 있었으니 정부의 정책이었다.
나름 세입자를 배려해 보증금을 동결했던 건데 전월세 상한제로 5% 인상 한도에 묶이는 바람에 현 시세와는 30% 이상 벌어지게 됐다.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어차피 갚아야 할 돈’이라고 감히 말할 수 없는 큰 돈이다. 그만큼 전세가가 많이 올랐다.
세입자는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 둘을 키우는 가정이다. 처음 만났을 때 이 집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으니 내년에, 혹은 이번에 별 말 없이 지나간다면 다음번 재계약 때는 계약 갱신을 요구할 확률이 99%쯤 될 터였다.
그렇다고 실거주 목적으로 산 집을 되팔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대로라면 지금 사는 월셋집에서 총 4년을 더 기다려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이것저것 다 현금화해서 보증금의 절반을 마련하고 나머지 절반은 대출로 채워 세입자를 내보내고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처음 계획을 2년 앞당긴 셈이다. 임차계약을 6개월만 연장한 이유다.
이 결정으로 앞으로 꽤 오랫동안 지금 오피스텔에서 내는 월세보다 많은 대출이자를 은행에 내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지출도 줄여야 한다. 저축이나 투자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나마 나는 집주인으로 통보하는 입장이고, 월급이란 버팀목도 있어 당장 가계가 흔들릴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세입자는 다를 것이다. 초등학생 자녀 둘을 키우는 집에서 전세로 사는 지난 2년 동안 저축을 한다고 해봐야 얼마나 모을 수 있었을까? 그동안 오른 시세를 감안하면 전세보증금에 목돈을 보태 집을 장만하는 것은 고사하고, 시세대로 보증금 올려서 전셋집을 얻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시세 뛴 건 둘째 치고, 전세 매물도 없다. 지금 이 아파트 단지는 물론이고 옆 단지, 그 옆 단지도 마찬가지다. 내년 봄 이사를 해야 할 텐데 올 겨울에는 매물이 좀 나오려나?
그 가족이 처할 현실이 뻔히 눈에 보이는데도 나는 매몰차게 나가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이 야박한 말을 어떻게 꺼낼지 벌써부터 막막하다. 어쩌면 지금쯤 세입자도 계약갱신청구권을 만지작거리며 집주인에게 이런 전화가 걸려오진 않을까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디 우리 집 뿐일까. 지금 전월세 만기를 앞둔 세입자들과 집주인들의 처지가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번 법 개정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가을 이사철 한번 거치고 나면 내년부터는 좀 나아질까?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바꾼 법인데 집주인은 물론 세입자에게도 피해가 돌아가고 있으니 이걸 극히 일부의 부작용으로 국한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급한 밥에 많은 국민이 체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